[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비너스의 단장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비너스의 단장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승인 2019.06.18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옥 사유담 이사] 아름답다.
평가하기 전에 이미 공간을 먹어버리는 작품이 있다.
벨라스케스의 역작 '비너스의 단장'이 그렇다. 해석에 따라서 '거울보는 비너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목이 뭐라해도 상관없이 아름답다. 1644년 당대 미인은 지금의 미인과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 동시대 네덜란드의 루벤스의 작품 속 미인은 샐룰라이트가 작열하는 코끼리 같은 뒷태를 보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특이한 일이다.

모름지기 어느 정도 넉넉한 살들이 덥고 있는 후덕하고 뽀얀, 그러나 손만큼은 작고 아담한 여인이 당대의 미인이었을것이다. 다른 그림들을 비교해보면 그렇다. 그러나 벨라스케스의 여인은 있어야 할 곳에만 지방이 배치된 마른 듯한 관리받은 아름다움이었다.
카톨릭 규율이 엄격하여 일절 누드화를 그릴 수 없었던 스페인 상황에서는 위험한 그림이었다. 은밀하게 그려지고 보관되다가 영국으로 넘겨졌고 지금은 런던 네셔널갤러리에 있다.

나라 밖이라고는 두 번의 이탈리아 출장 밖에 없었던 벨라스케스는 루벤스를 통해 넓어져갔다. 화가이면서 외교관이자 사업가의 자질도 뛰어났던 루벤스는 신화를 즐겨 그렸다. 신화 속의 여인들은 벗고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페인은 상황이 달랐다. 특히 왕실화가는 작업실이 궁궐 안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그려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롤모델인 루벤스의 조언과 이탈리아 여행은 벨라스케스의 눈을 열어주었다. 눈을 떴다고 할까? 특히 베네치아 눈부신 빛의 화풍에 매료되어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빛이 잔잔하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티치아노를 무척이나 존경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조르조네, 틴토레토의 화법이 벨라스케스의 손에도 베어들었다.

그렇게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세계를 완성했다. 조언에 멈추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벨라스케스는 자연으런 빛을 보았다.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스며든 빛의 역할에 시선을 두고 실제 느껴지는 풍경을 그렸다. 이렇게 과거에 잘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보다 더 미래를 열어논 화가를 전위적 화가라고 부른다.
바로 아방가르드라는 말이다.

벨라스케스는 알았을까? 모르겠지만 그의 고민은 현대회화가 되었다. 인상주의와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있는 그대로 빛에 변화에 민감한 인상을 그려낸 이가 벨라스케스였다.
그림 속에 소품을 활용해 주제를 암시하는 법인데 벨라스케스는 빛의 온도와 색감의 분위기 인물의 표정으로 감정을 들어낸다. 그림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무리하지 않지만 과격할 만큼 화가의 의도를 찾을 수 있는 그림이 벨라스케스의 그림이었다.

와중에 가장 좋아하는 컬러가 검정색이어서 벨라스케스 블랙은 스페인 블랙이 되었다. 빛을 깨달은 화가가 선택한 불가사의한 검정이었다.
그의 감정이 낳은 내 속의 내가 가지고 싶은 비너스의 단장이었다. 차마 이탈리아의 티치아노처럼 앞태는 못그리고 뒷태를 담았다.그 예쁜 얼굴이 못내아쉬웠을까? 거울을 사용에 마음을 담았다. 그러나 거울의 각도는 얼굴이 아니다. 아마 보여주고싶은 부분은 다른 부분이었나 보다.

이렇게 화가의 호기심은 앞으로 400년 동안 회화 성장발전의 발전기같은 역할을 하였다.
고야, 마네, 시슬리, 피카소, 프란시스베이컨, 달리, 클림트의 스승이 되었고 그렇게 퍼져나갔다. 화가들의 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에게서 얻어야하는 것은 하나였다.
그저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특히 그 뽀얀 등짝에 한 표, 매혹적인 엉덩이에 두 표, 가녀린 목덜미와 팔과 개미허리에 세 표를 주겠다.
아무리 보아도 더 보고 싶어서 관음증의 원조라고 말해지는 그림은 벗어서가 아니라 아름다워서 멈추게된다. 진짜다.

#안봤소? ㅎㅎ 나는 봤소! 네셔널갤러리 #벨라스케스 #스페인블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