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糞火爐香(우분화로향)’ - 쇠똥 화로의 향내
‘牛糞火爐香(우분화로향)’ - 쇠똥 화로의 향내
  • 탄탄스님
  • 승인 2019.06.2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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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자장암 감원, 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스님(자장암 감원, 용인대 객원교수)

인민화가이자 중국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근대화가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는 만년에 마오쩌뚱·저우언라이에게도 추앙을 받았으며, 중국 인민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노(老) 화백이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꽃, 물고기, 새, 산수를 주제로 하였고, 그림 속에 실린 시제조차 자연주의를 묘사하였다.

‘牛糞火爐香(우분화로향)’, 쇠똥 화로에서 향내가 난다. 이는 치바이스가 지은 자서전의 제목이다.

그가 추억하는 유년기의 집안 형편은 “늘 가난하였으며 양식이 바닥난 빈 아궁이에는 빗물이 고이고, 그 빗물 위로 개구리가 뛰어다녔다”고 하며 “배고픔을 참고 참다가 쇠똥 담긴 화롯불에 어머니가 구워준 토란은 구수했고,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기는 하였지만 질화로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식구들을 보며 행복했다”고 한다.

비록 궁상맞고 가난하였지만, 쇠똥 화로의 토란 향내는 그의 마음을 넉넉히 행복한 청빈으로 가득 채웠으니, 진정한 삶의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자서전에는 쓰여 있지 않았지만, 1957년경까지 약 10년간의 행적을 보면 치바이스의 정력적인 ‘민중사랑 예술행적’도 살펴 볼 수가 있는데, 담백하고 솔직한 성품의 치바이스는 만년까지 수백 수천 번의 작품 창작행위(그림과 전각)를 그치지 않았으며 정력적인 활동으로 늘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였고 화풍을 새롭게 창조하려는 노력에 나태하지 않았다.

그의 시골풍의 옛 그림은 배부른 추억을 가진 자는 결코 그릴 수 없는 빈궁한 자를 위로하는 그림이었으며, 연꽃과 개구리 선홍색, 갈색, 노란색, 회색, 검은색, 연녹색을 죽 펼쳐놓으며 사연 있는 생물의 기억을 새롭게 일깨우기도 한다.

삶의 순환과 계절의 무상함처럼 영고성쇠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인간에게, 살아온 추억만은 지워지지 않고 훗날엔 따뜻하게 쓰다듬기도 한다.

치바이스의 이러한 민중적인 화풍이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을 조응하게 하였으며, 그의 빼어난 붓놀림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그의 그림 밑바탕에 그만의 끊임없는 노력과 배움을 실천하는 노정이 있었으며, 천하를 여행하며 많은 벗들을 사귀고 스승을 공경하고 따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계발하려 노력했던 이러한 위대한 예인의 모습에서는 넘치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富貴猶經五鼎飡(부귀유경오정손)
貧窮自足一簞食(빈궁자족일단식)
等是浮休百歲間(등시부휴백세간)
此何爲失彼何得(차하위실피하득)

부귀하나 오정 음식 되레 가볍고 
빈궁하나 대그릇의 밥으로 만족한다네
백 년간 떠돎은 다를 바 없으니
이것이 어찌 잃음이 되고 저것이 어찌 얻음이 되리오

또 다른 ‘쇠똥 화로의 향내’를 소개해본다면,

‘고승전(高僧傳)’에 당 숙종 연간에 활동한 나찬(懶瓚)이라는 선사가 등장하는데, 또 다른 이름은 나잔(懶殘)이며, 법호는 명찬(明瓚)이다. 다른 선객들이 땀 흘려 울력을 할 때마다 늘 느긋하고 나태하여 선방에서 많은 질책을 받았다. 그처럼 괴팍하며 나태한 이를 ‘게으른 명찬’ 이라는, ‘나찬’으로 불렸다.

일본의 선승 타쿠앙 소호(澤庵宗彭, 1573~1645)가 그린 그림에서처럼, 나찬 선사는 얼굴에 잿가루를 덕지덕지 묻혀가며 쇠똥 불에 토란 구워 먹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어느 날은 자신을 찾아온 이에게 쇠똥 불에 굽던 토란을 반 토막 나눠주며 장차 재상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으니 기이한 행동으로 삽시간에 이름이 높아져서 황제에게 까지 명성이 전해졌고, 황제는 그를 초빙하고자 사신을 보냈다.

하지만 사신이 황제의 조칙을 전달했음에도 선사는 오직 쇠똥 불에 토란 굽는 일에만 몰두할 뿐 이었다. 쇠똥 불에 구운 토란이 참으로 맛있었던 듯, 얼굴에 묻은 검은 잿가루와 턱까지 흘러내린 콧물조차 개의치 않았다.

보다 못한 사신이 “얼굴에 묻은 잿가루와 콧물은 닦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웃으며 말하니, 선사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얼굴 닦는 수고로움을 해야 한단 말이오?” 말을 마친 나찬 선사는 계속 구운 토란을 까먹을 뿐이었다.

황제가 머무는 궁궐은 나찬 선사에게 그저 성가신 작은 소굴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사신이 가져온 황제의 조칙에도 개의치 않고 토란을 굽고 먹는 일에만 온 신경을 쏟아부은 것이다.

부귀하거나 빈곤하거나 결국은 같은 세월을 보내고 추억하는 것만은 다르지 않을 뿐이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과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며 행복을 추구할 때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쉬울 듯하지만 청빈을 실천하는 길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자족하며 사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넘치지 않는 삶이 인생의 묘미이며 진리이지만, 그러나 현실에서는 누구나 가난한 삶을 원치 않는다. 예전의 가난한 시절을 추억하고 배고픈 시절을 되뇌지만, 현재의 삶은 ‘등 따습고 배부르기’ 만은 만인이 지향하는 현실관일 터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쇠똥 화로에 그 향내처럼, 그 기가 차도록 맛있게 잘 익은 토란 맛처럼 필자도 그리운 맛이 있었으니, 며칠 전 비가 몹시 오는 날 고향의 어머님께서 애호박, 풋고추 썰어 넣고 손수 끓여 주시던 그 맛깔스러웠던 수제비국이 그토록 오늘까지도 간절하게 그리웠던 이유는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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