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계란부치는 노파- 벨라스케스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계란부치는 노파- 벨라스케스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승인 2019.06.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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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사유담 이사] 덜덜덜 계란이 요동치는 그림이다. 분명 멈춰있는 그림인데 고개를 돌릴 때마다 계란이 덜덜덜 익는 게 보인다.

벨라스케스만이 가능한 기법이었다. 베짜기를 하는 작품에서는 물레가 팡팡 돌아가는게 보이는 것 같다.
거대한 캠버스에 주로 작업을 하던 화가는 긴 붓으로 그렸다. 그래서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3미터 뒤에서 봐야한다. 나가다가 돌아서면 가능한 일이다. 프라도미술관은 그 사실을 알았는지 거대한 공간을 벨라스케스에게 내어주었다.

오늘의 그림은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된 것에 비하면 가로세로 1미터의 작은 그림이다. 스코틀랜드에 있다. 그림 안에서는 노인이 계란을 부치고 있다. 아이는 노인을 보고있는데 뭐가 기분 나쁜지 뾰루퉁이다. 내가 봐선 한참 전부터 저 얼굴이었겠다.

이 댁은 벨라스케스의 집이었을 게다. 벨라스케스는 높은 신분의 귀족은 아니었고 평민 중에 잘사는 계층이었던 듯 싶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두었으나 노인이나 아이 정도인 걸 보면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간살이와 부엌의 싸이즈도 넉넉한 집안이 아님을 얼핏 보여준다.

노인은 급하게 계란을 부치고 있는데 그릇 안의 계란상태를 봐선 기름에 지지고 있는게 아니다. 흥건한 액체도 기름이라기엔 너무 차분하다. 예민한 벨라스케스가 그걸 놓칠리가 없다.
기름이었으면 자발스럽게 튀어올랐을 것이고 계란의 가생이는 갈색으로 칠해졌을 것이다.

물에 조심스럽게 수란을 익히고 있다. 수란은 모양이 흐트러지면 안되니까 가만히 두고 익혀야 한다. 주인의 식탁에 포도주와 멜론을 가져다 두려는 듯 아이가 양손에 들고 서있고 계란도 가져가려는지 기다리고 서있다. 그러니 손은 무겁고 할머니는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고 짜증은 날대로 난 모양이다.
손도 두 개면서 짜식이 어떻게 들고 가겠다고 심통을 부리고 있나 모르겠다.
아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은 평안하고 귀한 얼굴로 제 일을 이어가고 있다.

남루하고 비천하지만 입은 옷과는 상관없이 노인은 자신의 움직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계란을 부치는 그릇이 번쩍이는 것과 다른 그릇들도 오래돼 보이지만 때 하나 없이 빛나는 것만 봐도 노인의 성품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저렇게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서도 보았다.

노인의 그 숭고하기까지 한 일상을 담은 것은 19살 벨라스케스였다. 천재는 천재였다. 빛을 넣어 선명하고 어두움을 넣어 강열하지만 어딘가 따뜻한 것은 벨라스케스의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저런 예쁜 눈을 가진 또 한명의 화가를 안다. 뚤르즈 로트레크였다. 언젠간 다뤄주겠다.

사람의 마음을 그리는 벨라스케스의 재능은 진지한 관찰에 있었다. 17세기 유행한 보데곤(bodegón)양식의 그림이었다. 선술집이라는 말에서 유례한 이 양식은 정물화라고 표현하면 된다. 그러나 집기와 함께 벨라스케스는 사람을 함께그려주었다.

세비아 집에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던 벨라스케스는 곧 마드리드의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죽기 전에 제 가문을 귀족의 반열로 올려둔다. 겨우 죽기 하루전 이었다.

#사유담 #파체코 #계란을부치는노파 #벨라스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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