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피카소의 생가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피카소의 생가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6.2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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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생가.
피카소의 생가.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피카소는 어머니를 더 사랑했다. 스페인 사람들의 작명 방식은 본인의 이름, 아버지의 성, 어머니의 성 이렇게 나열한다. 유럽에선 보통 결혼하면 여성은 본인의 성을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데, 스페인은 이사벨 여왕 이래 여성의 기가 세서 그런가 본인의 성을 그대로 유지한다. 보통 친구들 사이에선 본인의 이름을 부르지만, 언론에 소개될 때는 성으로 그것도 아버지의 성으로 쓴다. 하지만, 본인 자신이 불려지길 원하는 이름이 따로 있거나 (보통 이름과 성을 조합해서 별칭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성으로 본인이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피카소의 본명을 들으려면 어지간한 인내심이 아니면 어렵다.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 (Pablo Diego José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ía de los Remedios Cipriano de la Santísima Trinidad Ruiz y Picasso) 이걸 줄여서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 라고 하며, 파블로 루이스라고 불려야 맞는데 본인이 어머니의 성 피카소를 선택했기에 우리는 다 피카소라고 부르는 것이다. 

피카소 뿐 아니라 벨라스케스, 무리요 등 이름난 스페인 화가 중에 어머니 성을 쓴 사람이 제법 있다. 엄격한 아버지 보다 자애로운 어머니에게 더 많은 애정을 느껴서 그런 것일까. 165cm가 채 안 되는 아담한 크기의 맏아들 파블로는 보는 엄마로서는 유난히 더 모성애를 자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훗날 회화계의 거인이 된 피카소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항구 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났다.

피카소의 고향에서 그의 생가를 찾아가 보았다. 앗, 이런 별 대단할 게 없다. 딱히 눈에 띄는 것도 없다. 말 그대로 파블로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집일 따름이다. 별 거 없어도 거장이 태어난 곳이기에 수많은 방문객들이 지금도 찾는다. 그의 어린 시절을 상상으로 그려보면서 ‘그래, 피카소도 어렸을 땐 나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고 철없는 생각을 해 봤다.

피카소의 유년시절 사진.
피카소의 유년시절 사진.

몇 점의 그림과 소품이 때로는 아기자기하게 때로는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곳을 짧게 둘러보고 나왔다. 불현듯 내 아버지의 고향과 생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어린 나의 세상에서 가장 큰 거인이셨다. 아버지의 생가 보단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집이라 해야 더 맞을 거 같다. 동산, 계곡, 들판,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 그려졌다. 으레 명절과 방학 때면 찾아간 그 곳. 여기처럼 특별한 건 없었다. 육남매를 키우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리즈시절 사진, 어린이 아버지, 친척분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가득한 사진, 작은 아버지의 족자, 큰 아버지의 시화집...

여름이면 소금강가로 가서 시원하게 깨벗고 놀다가 특유의 쇳조각 향이 느껴지는 소고기 라면 끓여먹는 재미에 얼굴은 씨꺼멓게 타고 등짝은 허물 벗겨지느라 밤만 되면 ‘아퍼요 아퍼’ 했던 기억도 난다. 농약 뿌리러 할아버지께서 논에 가시면 나도 따라가 보지만 막상 할 일이 없어 그냥 빙빙 배회했던 일도 생생하다. 그러다 옆 동산에 올라가 마냥 산책 아닌 산책을 하며 무덤인 줄도 모르고 오르내리던 일도 영상마냥 펼쳐진다.

김덕현 Steve

별 반 대단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지나고 나면 전부 추억이고 눈물과 웃음이 깃든 이야기 상자가 되어 자꾸만 마음 한켠을 건드린다. 그러자 다 자란 불혹의 아재는 이내 다시 유약한 어린이가 되어 시골 할머니 댁 한구석을 부지깽이 들며 성화봉송이라며 휘돌고 있었다.

피카소의 집에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려니 아버지 생각이 너무나 그새 눈가가 젖어든다. 이렇게 추억은 시공간을 넘어 그리움을 남겨놓고 다음 정거장으로 떠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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