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공장이 예술이야… 전주 팔복예술공장
써니! 공장이 예술이야… 전주 팔복예술공장
[여름시즌] 한국관광공사 선정 '내가 추천한 숨은 관광지'
  • 강주희 기자
  • 승인 2019.07.10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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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예술공장의 마스코트가 된 써니_박상준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팔복예술공장의 마스코트가 된 써니_박상준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전주 팔복예술공장-전북 전주시 덕진구 구렛들1길

기린대로에서 전주제1일반산업단지로 들어선다. 팔복예술공장 가는 이 길은 북전주선 철도와 나란하다. 한때 팔복동 전주제1일반산업단지에서 생산한 제품이 북전주역을 거쳐 분주히 퍼져 나간 길이다. 철도 주변에 이팝나무가 늘어서, 5월이면 꽃놀이하러 오는 이가 많다. 6월에는 풍성한 초록이 대신한다. ‘인생 사진’을 찍으려고 철도로 들어서는 이들이 있는데, 기차가 하루에 두세 차례는 오가니 안내판의 ‘경고’ 문구를 무시하면 곤란하다.

이팝나무 푸른 길을 500m 남짓 걷자, 팔복예술공장을 알리는 녹슨 원기둥이 보인다. 뒤쪽에는 옛 공장 이름 ‘쏘렉스’가 적힌 굴뚝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장면이다. 안으로 들어서며 ‘팔복’이라고 되뇐다. 흥미로운 이름이다. 팔복은 여덟 선비가 과거에 급제한 터라 이름 붙은 팔과정(八科亭), 일대를 대표하는 마을 신복리(新福里)에서 따왔다. 팔복동에는 1969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공장단지가 들어섰다.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에게는 ‘팔과’나 ‘신복’이 길하고 복된 이름일 수 있겠다.

못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벽_박상준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못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벽_박상준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이곳은 1979년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공장으로 문을 열었다.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했으니 ‘예술 공장’인 셈이다. 음악이 지금처럼 음원이 아니라 카세트의 ‘테이프’로 존재한 시절이다. 카세트테이프 공장은 호황을 누리다가 1980년대 말 CD가 나오면서 위기를 맞았다. 회사는 1987년 노조와 임금 협상 과정에서 공장을 폐쇄했고, 노동자들이 400일 넘게 파업으로 맞섰다. 공장은 결국 1991년 문을 닫고 25년 동안 방치됐다. 그러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산업 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에 선정돼 기지개를 켜고, 2년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쳤다.

지난 2018년 3월, 팔복예술공장이 세 동 가운데 A동을 중심으로 문을 열었다. B동은 교육센터, C동은 다목적 공간으로 준비 중이다. A동은 2층 건물이다. 밖에서 보면 공장과 예술, 두 가지 면이 드러난다. 공장은 옛 건물의 나이테를 잃지 않았고, 예술은 그 외관에 제 개성을 발휘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A동과 B동을 잇는 붉은색 컨테이너 브리지가 낡은 건물에 생기를 더한다. 옥상 쪽도 눈길이 간다. 난간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아트 박스’ 컨테이너가 위태하면서도 독특하다.

A동 로비 역시 밖과 다르지 않다. 예술과 공장, 오래된 흔적과 새것이 어우러진다. 깨진 벽이나 벗겨진 페인트와 비디오아트 작품이 대비된다. 재생 공간을 찾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을까. 그래피티와 낙서도 옛것과 새것의 가교인 듯하다.

팔복예술공장 2층 전시실_박상준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팔복예술공장 2층 전시실_박상준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로비 오른쪽에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써니’가 있다. 공장의 특징을 살려 1970~1980년대 정서를 반영했다. 자연스레 2011년 개봉한 영화 '써니'가 떠오르고, 보니엠의 노래 ‘Sunny’가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카페 써니는 카세트테이프를 만들던 ‘썬전자’와 노동자 소식지 '햇살'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니 공장에서 일한 여성들을 기억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탁영환 작가가 디자인한 ‘써니’가 한 번 더 그녀들을 기념한다. 청바지에 초록색 두건이 여공(女工)을 떠올리게 한다. ‘써니’는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크다. 밝고 건강한 기운을 뿜어 카페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나 진배없다. 캐비닛에는 생산일보, 근태 현황, 출근부와 카세트테이프 릴 등을 전시한다. 고작 30년이 지났을 뿐인데 유물처럼 느껴진다. 캐비닛 맞은편은 그림책방이다. 볼로냐라가치상 수상작,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상 수상작 등 그림책 120여 권을 전시한다. 카페 써니는 예술가와 마을 주민이 함께 운영한다. 한때는 ‘써니’였을 아주머니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린다.

전시 관람이 목적일 때는 2층부터 들러도 좋다. 세 개로 나뉜 전시장이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동시대 예술의 실험과 창작’이라는 팔복예술공장의 비전이 담긴 작품을 주로 전시한다. 남쪽 문으로 나가면 작품이 더 있다. 옛 건물의 주인이던 공장 노동자의 삶의 녹아 있는 작품이다. 먼저 문이 없는 화장실이 전시장이다. 실제 사용하던 화장실로 변기마다 카세트테이프, 케이스에서 분리된 테이프 등이 가득하다. 유진숙 작가의 ‘하루’라는 작품이다. 당시 여직원은 약 400명인데, 건물 내 여자 화장실의 변기는 네 칸뿐이었다. 화장실 옆 벽에는 ‘예쁘게 빛나던 불빛, 공장의 불빛~’으로 시작하는 가수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노랫말이 적혔다. 그 시절 그녀들에게 전하는 뒤늦은 위로인 양하다.

옥상 아트박스 전시_박상준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옥상 아트박스 전시_박상준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길은 다시 두 갈래다. 계단을 올라 3층 옥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 계단 벽에 박방영 작가의 그림이 마치 카세트테이프처럼 이어진다. 1층 입구 옆 외벽 철제 대문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이처럼 팔복예술공장은 전시장 외 곳곳에 숨은 그림(작품)을 찾는 즐거움이 값지다. 전시에 따라 공장의 옛 장소나 여백이 다채롭게 활용된다.

옥상은 인근 공장 지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반쯤 허물어지거나 골격만 남은 구조물이 몇 개 있는데, 그 안에도 작품을 전시한다. 공간과 작품이 어울려 이색 전시를 연출한다. 건물로 들어오기 전, 바깥에서 올려다본 ‘아트 박스’도 있다. 컨테이너가 만드는 프레임이 흥미롭다.

2층 컨테이너 브리지 쪽은 B동으로 안내한다. 내부에 벽화가 있고, 긴 창으로 햇살이 스미고 바람이 지난다. 브리지 안의 예술과 바깥의 자연이 한 작품 같다. 컨테이너 브리지는 B동 입구에서 멈춘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1층 중정으로 내려간다. A동과 B동 사이 브리지를 받치는 컨테이너 박스 두 개도 눈여겨보시길. ‘팔복 꿈!틀! 만화책방’과 ‘팔복 꿈!틀! 그림방’이다. 만화책 49종 900여 권에 파묻혀 깔깔거리거나, 가족과 함께 낙서하듯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실내가 답답할 때는 두 컨테이너 사이 들마루를 권한다. 초록 그늘 아래 느긋하게 머물러봄 직하다. 그곳에서 보면 주변의 푸른 나무가 예술이다. 카세트테이프 세대라면 옛 추억에 젖어, 까마득하게 잊은 노래 한 구절을 절로 흥얼거릴지 모르겠다. “Sunny one so true, I love you” 하고 말이다.

팔복예술공장 관람은 무료,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다. 카페 써니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7시(월요일 휴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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