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틀린게 아니라 다를 뿐 (feat. 장애)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틀린게 아니라 다를 뿐 (feat. 장애)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7.11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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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스페인에 살면서 우리나라와 피부에 와닿게 차이점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일상에서 장애인을 무척 자주 본다는 점이다. 거리를 활보할 때도, 지하철과 버스를 타며 이동할 때에도, 쇼핑몰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도,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식사 후 공원에서 한가로이 산책할 때도, 심지어 여행 가는 단체 일행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건 장애인을 이웃으로 마주한다. 혼자 다니는 성인 장애인도 있지만, 보호자와 함께 하는 장애인들도 많이 마주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장애인을 흔하게 봤던가 싶을 정도로 스페인에선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그냥 이웃주민이나 행인처럼 쉽게 본다. 워낙에 일상에서 마주 대하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특별하게 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공공 장소에서는 자연스레 그들을 보다 배려해 주고, 우선권을 주는 것을 보게 된다.

경제적인 수치로 따지자면 우리보다 한 순위 아래에 있는 그들이지만, 삶에서 마주하는 무의식적인 시민의식을 보고 있노라면, 몸에 자연스레 배어 있어 적정한 내지는 적절한(?) 수준의 친절과 배려는 돈에 목매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들의 친절을 두고 적정하다고 쓴 까닭은 무조건 반사처럼 장애인을 보자마자 달려드는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는 주위에서도 기다리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필자의 경험만을 두고 쓴 것이기에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공공 시스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내 버스의 경우 오르내리는 계단이 없다. 정류장에 정차할 때면 차량 우측을 기울여 줘서 보다 편하게 타고 내릴 수 있게 한다. 휠체어 장애인이 탈 때면 일단 좁은 앞문 (좁다고 해도 유모차가 넉넉히 들어갈 정도로 여유가 있다) 대신 큰 뒷문으로 이용하게 한다. 차량이 우측으로 기울고, 삐삐삐삐 알람 소리가 나면서 밑판이 나와 정류장과 버스를 이어준다. 휠체어가 오르면 본인이 또는 주위 도움으로 고정판에 휠체어를 대고, 안전벨트를 채우고, 알람과 함께 밑판은 들어가고, 기울어진 차체는 원래대로 돌아간다. 기사가 장애인의 안전을 확인하고 나서야 출발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쓸 만큼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편해 하거나 싫은 기색이 없다. 하다못해 바쁜데 왜 이러고 있나 하며 눈길 주는 사람도 일절없다. 너무도 당연하단 듯이 여유를 갖고 기다릴 뿐이다. 장애인 당사자는 미안해 하며 perdón (뻬르돈, 미안해요) 이라 하자, 주위 분들은 저마다 아니라고 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승객은 보던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처음 봤을 텐데도 이웃사촌인 거 마냥 말을 건내며 얘기를 트기 시작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현장을 본다. 군중 속에 고독을 느끼는 도시인데 인간미가 훈훈하게 살아있는 현장을 보니 마음에서 따뜻함이 움을 틔우고, 부러움의 바람이 시원스레 밀려온다. 몇 정거장 지나 그는 장애인 전용 버튼을 눌러 곧 하차할 것을 알리고, 정류장에 도착하자 탑승했던 과정 그대로 거꾸로 안전하게 내린다. 떠나기 전 잠깐의 미소로 버스 안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그저 그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을 뿐,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했음에도 시나브로 찾아온 행복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월요일 저녁 마드리드의 한국 문화원에서는 고국에서 찾아온 발달장애 연주단체 아트위캔 ArtWeCan의 작은 연주회가 있었다. 우리문화에 관심있는 현지인들이 제법 참석했다. 박수갈채나 열띤 환호는 적었다. 그러나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인을 사랑하며, 한국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진 현지인들의 진지한 태도는 어떤 함성보다도 연주공간을 가득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장애인’의 어설픈 장기가 아닌 ‘뮤지션’의 진정어린 연주였다. 그 날의 연주는 그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다. 그렇게 이어진 우리는 틀린게 아니라 다를 뿐이었고,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궁극에는 같은 성정을 지닌 따뜻한 사람이었음을 아트위캔의 연주회를 통해 재확인 할 수 있었다. 

김덕현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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