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합스부르크 립(Habsburg-Unterlippe)- 벨라스케스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합스부르크 립(Habsburg-Unterlippe)- 벨라스케스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승인 2019.07.1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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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사유담 이사]  원판이 안되면 뽀샵도 한계가 있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펠리페 4세의 초상화 였다. 오로지 벨라스케스에게 그리게만 했다는 초상화였다. 벨라스케스가 그려서 저 정도면 왕은 못생긴 거다.

고질병인 주걱턱이 빠지면서 얼굴이 말처럼 길어졌다. 근친혼에서 온 심각한 기형이었다. 턱이 튀어나와 입이 다물어지지않았고 침이 질질 흘러 손수건을 달고 있을 정도였다. 음식을 씹으면 질질 샜고 소화가 잘 안됐다. 그럴 때면 가슴을 주먹으로 쳐서 신하들은 같이 밥먹는걸 싫어했다고 한다. 잠이 들면 입을 다물 수 없어 벌레가 들어가기도 했다. 합스부르크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벨라스케스는 왕을 높이 두고 아래에서 그려 턱을 최대한 커버했다.
커버해서 저렇게 말 같으면 실제는 더 심했을 게 뻔했다.

수치스러운 합스부르크의 저주였다.
펠리페 4세는 자식들이 줄줄이 죽어나갔다. 13명 중에 3명만 십대를 넘어섰다. 아들 카롤로스 2세는 주걱턱, 정신병, 지능저하 등등 나쁜 모든 조건을 타고 났다. 자식없이 떠났고 합스브르크 왕가는 끝이 났다.

망한 왕에게 따라붙는 무능을 논하기엔 카롤로스는 2세는 기본이 안됐다. 그래서 그랬을까? 비난은 아버지 펠리페 4세에게 몰렸다. 펠리페 4세는 정치를 재상에게 맡기고 제 놀기에 신이 났다고 비난했다. 정치를 재상에게 맡긴 것은 사실이었고 나름에 권력분산이었다.

스페인은 펠리페 2세의 전성기를 끝으로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포르투갈이 독립하고 네덜란드가 독립했다. 카딸루니아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땅이 잘려나갔고 비난이 이어졌다. 내부 개혁운동은 기득권의 반발로 성공하기도 어려웠다.

머리가 아팠을까? 그럼에도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스페인 사상 가장 많은 예술정책을 폈다. 벨라스케스, 무리오, 수르바란, 루벤스 등등의 화가들이 등용되었고 연극, 희곡 등이 발전했다.
그렇게 사들인 그림은 800점 이상이 되었고 이 그림은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안다. 펠리페 4세의 작품들은 17세기 스페인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21세기 스페인은 구했다. 그것도 넘치게 구했다.

#사유담 #주걱턱 #구라는미남급 #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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