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선공약은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사설] 대선공약은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 충남일보
  • 승인 2019.07.1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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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공약은 신성불가침의 도그마가 아니다. 공약과 경제운용 간 괴리가 생기면 적절히 수정·보완하는 게 책임 있는 국정운영의 기본 자세라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었던 ‘내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 어려워진 데 대해 사과했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사과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여러 차례다. 그런데도 거듭 사과한 것은 특히 노동계의 반발이 부담을 느껴기 때문으로 보인다.

약속을 중시하는 문 대통령으로선 간판 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을 못 지킨 것은 쉽게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 초 집무실 광화문 이전계획을 보류했을 때와 달리, 국민 삶에 영향이 큰 최저임금 문제만큼은 ‘대통령 사과’로 정리한 이유다.

핵심 지지층인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요구한 데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면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사과로 인정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여론이 훨씬 높기 때문일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오히려 인하 또는 동결을 호소했고, 영세 근로자들조차 일자리를 걱정해 동결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현실을 외면한 채 “대선공약을 안 지키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기적이고 부적절 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수정할 공약은 이뿐만 아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는 현장에서 갈 곳을 잃었고, 주 52시간 근로제의 충격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탈원전은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 전기료 인상압력, 자연 훼손 등도 초래하고 있다. 게다가 4대강 보 해체, 자사고 폐지 등은 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예측불허다.

그런 점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인정한 대통령의 ‘사과’는 의미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저소득 노동자들을 정말 걱정한다면 최저임금 인상률에만 신경쓰지 말고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불공정 거래 질서를 개선하는 등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지급 여력을 높여 주기 위한 방안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을 계기로 대선 공약에 대해 더욱 유연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약속 이행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조건과 환경이 달라질 수 있고, 약속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고 나쁜 결과가 눈에 보이는 공약이라면 밀어붙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국익을 해치는 역효과가 분명한 다른 공약에도 실용성과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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