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곡(回心曲)
회심곡(回心曲)
  • 탄탄스님
  • 승인 2019.07.1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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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자장암 감원, 용인대 객원교수)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모란도 시절인연이 가면 향기와 추억만을 남기고 꽃잎은 뚝뚝 떨어뜨리고 지는 법이지만, ‘백화쟁발(百花爭發)’과 ‘천리유광(千里有光)’이란 옛 글귀의 멋스러움만은 심중에 그윽하며 산천의 흐드러진 나리꽃에도 눈의 호강은 여전하다.

분주한 삶에 매달려 사느라 인간의 기본 도리조차 제대로 못 갖추고 떠돌이로 헤매야 하는 삶이기에 현실에서의 갈등과 연민, 죄책감 등 회한과 후회스러움은 늘 가슴속에서 맺혀있다.

항상 스승과 부모에 대한 은혜를 생각할 때면 살뜰히도 생각나는 노래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회심곡(回心曲)’이다. 회심곡은 불가제와 민속으로 분류 할 수 있지만 절집에서는 회심곡을 화청 이라고도 칭한다.

대중이 쉽게 잘 알아듣도록 우리말 사설을 붙여 재(齋)가 끝날 무렵 부르는 노래를 ‘화청(和請)’이라 하며, 회심곡의 유래는 본래 불가의 화청에서 태동한 것이다.
 
태징과 북, 목탁을 치면서 부르는 구성진 가락은 절절하고 애처로워 듣는 이로 하여금 부모에 대한 효(孝)와 인간의 도리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가락의 스타일은 경기민요와 부합되는 요소가 많아서 명창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좋은 업을 많이 지으면 극락세계로 가고, 반대로 악업을 짓게 되면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노래 전체가 흘러간 유소년시절의 애달픈 추억을 떠올리게도 하고 부모님 은혜와 그 소중함을 애틋하게 일깨워주는 효과로 다가오는데, 이 노래 사설에서 가장 가슴이 아리고 절절하게 사무치는 것이 다음 부분이다.

인자하신 어머님이 누우시고/ 마른자리는 아기를 뉘며/ 음식이라도 맛을 보고/ 쓰디 쓴 것은 어머님이 잡수시고/ 달디 단 것은 아기를 먹여/ 오뉴월이라 짧은 밤에/ 모기 빈대 각다귀 뜯을세라/ 곤곤하신 잠을 못다 주무시고/ 다 떨어진 쇠살부채를 손에다 들고/ 왼갖 시름을 다 던지시고/ 허리 둥실 날려를 주시며….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한들 어찌 어미와 아비에 대한 뼛골 사무치는 그리움을 잊을 수 있겠는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엔 들리지 않던 가락들이 새롭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으니 애절한 회심곡이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열 가지 부모님 은혜를 자세하고도 실감나는 글귀로 풀어서 엮고 정리한 회심곡은 그리하여 이 세상 사람들에게 새롭게 되새기고 오늘의 삶을 바로잡게 하는 훌륭한 인생지침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화청 회심곡도 범패의 한 부분인데, 부처님을 찬양하는 범패는 불교의식에서 사용되는 범서를 찬탄하는 말로 ‘어산’이라 하며, ‘범패’는 인도(범)소리 (패)라는 뜻을 품고 있다.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서 비롯되었다 하며, 범패의 기원에 대해서는 영산회상 기원설, 묘음보살의 음악 공양설, 조조의 아들 조식의 창작설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830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진감대사에 의해 전해졌고, 그 후 절에서 올리는 각종 재 때 쓰이며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의 3대 성악곡으로 발전하게 된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소리는 재를 올릴 때 소리와 절 밖에서 시주를 걷으며 축원하는 소리로 나뉘고, 재를 올릴 때의 소리는 다시 안채비와 겉채비로 나뉜다.

안채비소리는 절안의 병법이나 법주와 같은 학식이 많은 승려가 하는 소리로, 유치나 청사와 같은 축원문을 요령을 흔들며 하는 흔히 염불이라 하며, 겉채비소리란 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외부 범패승의 소리로 큰재를 올릴 때 초청하여 부르게 하는데 이 겉채비 또는 소리는 세련되고 복잡하여 음악적으로도 높이 평가된다.

대개 리듬과 화성이 없는 단성선율로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다시 그 스타일에 따라 홋소리, 짓소리, 화청으로 나뉘는데 특히 홋소리는 범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흔히 사방찬, 도량게, 복청게, 헌좌게 등 사설의 대부분이 5언이나 7언의 한시구조이다. 또 짓소리는 홋소리를 다 배운 범패승이 배우는 소리로 한문으로 된 산문이나 산스크리트의 사설로 반드시 합창으로 하며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이다.

짓소리의 종류가 예전에는 70여 곡이 넘었으나 요즈음은 불교 의식이 간소화되고 곡조 자체가 부르기 어려워서 대부분 사라지고 약 13곡 정도만이 전해지고 있다. 관욕게, 목욕진언, 오관계, 거불 등이며, 사설이 산문으로 되어있고 홋소리에 비해 억세고 꿋꿋한 발성법, 그리고 가사 한자를 가지고 길게 끄는 것이 특징이다.

화청은 재를 올리는 여러 절차 사이에 어장에 모인 회중을 축원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중이 잘 아는 선율에 불교의 교리를 사설로 쓴 노래 같은 것으로 포교의 큰 방편이며, 회심곡이라는 이명으로 불리고 있다.

화청이 근대 이후에 나타난 음악 형식이기는 하지만 그 존재 양상은 부처의 가르침이 전래된 이후 지속적인 포교의 의지와 염불로 대표되는 종교적 실천 행위에 두고 있으며, 한국 불교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한국 불교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성악(聲樂)형식의 문화가 외세와 일제의 폭압에 말살되어 가던 19세기 민중문화의 염원이 오롯히 담겨져 척박한 민초들의 삶의 희망과 발원이 녹여져 있고 더 나아가 광의적 문화적 해석을 해본다면 19세기 이후의 불교가 처한 상황에 의해 변용된 모습이다.
 
범패는 장중하고 엄숙하며 화청을 제외하고는 소리에 의미가 담겨있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근래에는 의식이 간소화되면서 영산재도 약식으로 지내고 범패도 안채비소리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쉽게 접하기 어려워지는 아쉬움이 있다.

어느 종교든 자신이 신념하는 종교를 널리 알리고 외연을 확장하며 생존을 도모하는 과정에서는 시대정신과 보편성을 담지한다.

억불정책과 피폐해진 사찰은 생존 전략으로 결사 (結社)형태의 신도 조직을 활용하여 저자로 나가 승려가 문전 염불을 하고 연희를 벌여야 했던 암울한 상황이었으며 염불 형태의 공연을 하고 시주를 모연했다.

종교와 공연 예술의 연계는 포교와 모금 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한 힘겨운 문화운동에서도 성(聖) 속(俗)을 구분 하려는 의지에 눈물겹다.

선방의 눈 푸른 수좌스님도, 후학을 위해 열정으로 일대시교를 열람하는 강원의 학승도, 부처님을 찬탄공양하시는 범패승도, 간절한 포교원력으로 불자들을 감동케 한다면 그것 또한 부처님 영산회상에서 만날 날을 앞당기는 돈독한 불연이 되지 않을까 한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사는 교포들에게 종교는 이민생활의 어려움에 큰 위안이 되어준다. 20여 년 전 이민 1세대 노 보살의 49재를 지내며 축원 화청(회심곡)을 해드렸더니 개성이 고향인 ‘자연화’라는 불명의 노 보살님께서도 당신이 세상을 등지고 49재를 올릴 적에 꼭 스님이 화청, 회심곡을 해달라며 굳게 약속을 해드렸는데, 사정이 생겨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귀국을 하였는데 수년 후에 돌아 가셨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프고 죄스러웠다.
 
“일심으로 정념은 극락세계라. 우리 부모 날 기를 제 겨울이면 추울세라 여름이면 더울세라 천금 주어 만금 주어 나를 곱게 길렀건만 어려서는 철을 몰라 부모 은공 갚을 소냐. 인생 비록 백년을 산다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이며 걱정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사는 인생, 어느 하가(何暇) 부모 은공 갚을 소냐. 청춘 가고 백발 오니 애달프고도 슬프도다.” 

회심곡이 서산대사가 효(孝)를 전파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하고, 더 멀리는 원효대사의 ‘무애가’와도 연관이 있다고 하며, 억불숭유 정책으로 절이 곤궁하여 사하촌의 예인과 동냥승 들도 부르고, 촌촌면면 풍물을 치고 돌아다니며 서민들의 복덕을 기원해 주던 비나리패도 부르고, 목청 좋은 경기명창도 부르는 회심곡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서민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불자가 아니어도 회심곡을 듣고 가슴 뭉클하고 때때로 뜨거운 눈물을 쏟게 하고, 묘하게 ‘사람들의 그렇고 그런 삶’을 깨닫게도 만들며 ‘혈육과의 아픈 이별’도 미약하나마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 돌아오기 힘든 이별을 앞둔 사람들이 회심곡을 골라 듣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불가제 회심곡인 화청을 법현스님과 입적하신 송강스님께 개인적으로 사사 받은 적이 있어 가끔 재의식에서 부르면 호응이 남다르다. 음력 7월 백중에는 여기저기서 회심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소중한 사랑을 이 회심곡을 통해 새겨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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