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시간여행, 꼬르도바의 메스키타 III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시간여행, 꼬르도바의 메스키타 III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8.06 15: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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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밍고 데 구스만.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메스키타의 눈부신 미흐랍에 넋을 잠시 놓았다.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가 보니 성체 현시대를 비롯한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성물들이 진열된 성물실이었다. 세밀한 도금장식의 성체 현시대는 미흐랍의 장식에 나간 넋을 더 멀리 쫓아내기라도 하듯 화려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성체 현시대 주위를 둘러보니 천주교의 성인들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러 성인 중 13세기 탁발수도회의 시초가 된 도미니크 수도회의 창시자, 성 도밍고 데 구스만이 아래에 횃불을 문 개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개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상징으로, 이는 도미니크 수도회 수사들이 ‘하느님의 개’를 자처해 당시에 느슨해진 생활을 엄격한 규율로 다스리고, 청빈과 봉사를 강조했던 점을 보여준다. 라틴어로 주님의 개를 뜻하는 단어 Dominicanes 와 도미니크 수도사들을 칭하는 Dominicans 의 발음이 비슷한 점에서 착안해 상징물을 고안했다. 그들이 믿는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있어 인간에게 가장 충직한 동물인 개와 같이 신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했던 도미니크 수도회는 설립 초기 거지 수도회 라는 별명도 있었지만, 훗날 이단 심문과 종교 재판의 최선봉에 서게 되어 사람들의 생사여탈을 좌지우지 하는 위치까지 올라가게 된다. 청빈과 이웃사랑을 내세운 종교단체일지라도 그 독단이 지나친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성 페르난도 3세의 꼬르도바 탈환.
성 페르난도 3세의 꼬르도바 탈환.

그 옆에는 1236년 코르도바를 탈환한 성 페르난도 3세의 업적을 기리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슬람은 공손이 무릎을 꿇고 성 페르난도 3세는 코르도바의 열쇠를 근엄하고도 인자한 모습으로 받아 들고 있다. 카톨릭계 스페인의 국토회복운동인 레콩키스타는 그저 그런 땅따먹기 전쟁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으로부터 거룩한 대의명분을 받은 성전(聖戰)임을 확고히 천명하기 위해 그림 상단에 성모님이 자애롭게 그 모든 장면을 내려다 보고 계심을 화가는 잊지 않았다.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의 편이기에 굵직한 사건에 대한 해석 또한 결과를 두고 경과의 가치를 가늠하고 평가하기 마련이다.

금과 은으로 빚어진 성물과 제기를 뒤로 하고 나와보니 다시 끝없이 펼쳐지는 기둥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밌는 점은 입구 때 있던 로마 신전의 재활용 기둥과는 달리 이곳은 증축을 거듭할 때 제작된 새 기둥이라는 점이다. 그 엄청난 역사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인부들이 저마다 기둥을 세우고 급여를 받기 위해 본인이 작업한 것임을 기둥 위에 표식을 새겨 놓았고, 이를 놓치지 않고 다 점토에 새겨 따로 보관해 두었다. 문득 우리에게도 고려 시대에 저런 어음이 있었던가 싶다.

증축된 사원에 사용된 새 기둥.
증축된 사원에 사용된 새 기둥.
인부들의 증서.
인부들의 증서.

메스키타를 둘러보며 이슬람 사원 일부와 성당 일부의 흔적은 봐 왔는데, 대체 대성당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궁금하던 차, 마침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슬람 사원에 흐르는 기독교의 오르간 소리라니!! 대체 세계 어느 곳에서 이런 이질적인 조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

소리를 따라가 보니 녹음이 아니라 실제로 오르가니스트가 악기 점검을 위해 연주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곳은 바로 꼬르도바의 성모승천 대성당!

성모승천 대성당 제단.
성모승천 대성당 제단.
성모승천 대성당 성가대.
성모승천 대성당 성가대.
성모승천 대성당 돔.
성모승천 대성당 돔.

일단 정면에는 성모 마리아가 손을 위로 올리고 하늘로 오르는 영광스런 장면이 그려져 있다. 양측에선 각각 눈에 익숙한 열쇠를 쥔 베드로와 검을 쥔 바울이 지키고 있고, 그 사이에는 믿음을 상징하는 십자가와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의 제자들의 다수 본래 직업을 암시하는 닻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중앙 주 제대 위 걸려있는 은 램프는 직경이 182cm에 무게는 200kg에 달한다. 양 옆 독서대 또는 강대상 아래에 대리석으로 만든 천사, 사자, 소, 독수리는 각각 신약 성경의 공관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을 뜻한다. 제단 맞은편에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두 대가 마주보고 있고 성가대 가운데에는 예수의 부활 장면이 조각되어 있어 신성함을 더해준다.

이처럼 눈길 머무는 곳마다 화려한 대성당을 두고 감탄하지 않는 자가 드문데 정작 스페인에선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스페인의 통일을 이룬 이사벨의 외손자 까를로스 5세의 탄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것인 줄 알았더라면, 당신들이 파괴하도록 허락지 않았을거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을 두고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을 지었다니…” 그의 눈으로 다시 성당을, 그리고 메스키타를 둘러 보았다. 이미 지나간 것을 어찌 돌이킬 수 있으랴. 그러나, 파괴에서 창조를 캐낸 꼬르도바는 정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원-성당을 재탄생시켰다. 탄식과 감탄의 경계에서 꼬르도바의 시간여행은 그렇게 아스라히 감흥을 남기고 물들어 가는 석양을 등진채 여일히 흘러간다.

Stev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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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 2019-08-10 20:43:18
마음에 와닿는 글을 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