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옛날 옛적에 세고비아에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옛날 옛적에 세고비아에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8.14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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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 알카사르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우리나라에서 서쪽으로 끝없이 가면 이베리아 라는 땅이 있는데 거기엔 옛날 옛적 카스티야 라는 성(城) 왕국과 레온 이라는 사자(獅子) 왕국이 있었답니다. 두 왕국은 훗날 페르난도 3세 왕에 의해 1230년에 하나의 왕국이 되었어요. 이후 그 왕국은 아라곤과 나바라 왕국까지 하나로 맺어지면서 거대한 에스파냐 통일 왕국을 이루었어요.

왕국이름이었던 카스티야와 레온은 지금도 17개의 자치지방 가운데 하나로 남아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북쪽에 있는 과다라마 산맥 너머에 자리잡고 있어 긴긴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지요. 거기에 가보면 제일 먼저 스페인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수도교를 볼 거에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보다도 더 오래된 로마제국 당시에 지어진 것이니 이 천년 가까운 세월이 고스란히 그 물길 다리에 새겨져 있는 셈이지요. 

그 수도교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큰 데다 보존도 잘 되어 있어서 '악마의 다리' 로도 불려져요. 그 옛날 인간이 지었다고 보기엔 너무도 완벽하니까요. 여기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 와요.

옛날 옛날 이 세고비아 마을에는 처녀 물장수가 있었더래요. 매일 큰 물동이를 지고 물을 길어 와야 했던 그는 경사를 오르내리기가 너무도 고되 누가 이걸 좀 대신해 줬음 좋겠다 생각했다지요. 꼭 요럴 때 소원을 들어주는 악마가 등장하잖아요. 악마는 처녀의 집 앞까지 물을 끌어올 다리를 동트기 전까지 밤새 지어 완성할테니 대신 그의 영혼을 팔라고 했더랩니다.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레파토리지요. 일단 아가씨는 당장 눈 앞의 편함만 생각하고 콜! 

그렇게 영혼이 달린 딜이 성립 되었는데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걸까, 아무래도 고민이 되지 않았겠어요.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아닌 거 같다 싶어 마을의 사제를 찾아 갔지요. 자초지종을 들은 사제는 성모님께 기도하라 했데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건 여기서도 통했나 봐요. 성모님은 새벽닭을 깨워 동트는 시간을 앞당겼고, 악마는 마지막에 얹을 돌 하나를 남겨두고 완성을 못하고 말았답니다. 이후 아가씨는 영혼도 건지고 물장사도 하며 해피엔딩. 대신 마을 사람들에게 얘기를 전했고, 마을 사람들은 성수(聖水)라며 좋아했데요. 아마 그 처녀는 두 번 다시 영혼을 두고 내기하지 말라 자자손손 유언으로 남겼을 수도 있겠지요.

 세고비아 수도교 

믿거나 말거나의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 수도교는 경외감 마저 드는 건축물이랍니다. 역사적 유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 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등록 되었고요. 아래 기단부를 보면 시멘트 한번 바르지 않고 오로지 돌 자체만을 쌓아 거대한 아치 형태를 이루었다는게 보면서도 신기할 따름이에요. 길이 728m에 높이 30m, 128개의 아치를 가진 수도교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세고비아의 상징으로 남아 있을 거에요.

수도교를 보고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치 명동 거리를 걷는 기분이 들어요. 아기자기한 가게와 식당이 죽 늘어서 있거든요. 다 올라와 보니 이번엔 자타공인 '대성당의 귀부인' 세고비아 대성당이 세고비아 시청과 마요르 광장을 앞에 두고 많은 여행객들의 사진세례를 받고 있네요. 영화 1492 콜럼버스 에도 나온 세고비아 대성당은 마치 몇 겹의 옷을 두르듯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전합니다. 대성당 곁에 있는 종탑은 무려 88m나 되는데, 안 그래도 높은 지대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터라 멀리 세고비아 초입 부분에서도 눈에 잘 띕니다. 때마침 정시가 되자 종은 묵직한 울림을 마을 곳곳에 전합니다. 잠시 미녀와 야수 애니에서 주인공 벨의 오프닝 영상이 떠오릅니다.

세고비아 대성당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 보면 어렸을 때 본 백설공주의 성이 왜 여기에 있지 하고 의문이 떠오릅니다. 바로 알카사르 궁인데 지금은 왕립포병학교이자, 각종 무기를 모아놓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사실 알카사르를 백설공주의 성으로 보려면 정면이 아닌 뒷모습을 봐야 해요. 이걸 보려면 차를 타고 빙 돌아 가거나, 경사진 계단을 타고 조심스레 내려가야 비로소 그 전경을 볼 수가 있답니다. 성의 본 주인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텐데 그걸 알아본 월트 디즈니가 새삼 대단한 분으로 다가옵니다.

이처럼 1세기 로마 물장수 처녀에서 시작해 20세기 디즈니의 백설공주 성에 이르기까지 세고비아는 옛 정취와 향수를 느끼기에 더 없이 좋은 마을이에요. 그렇게 시작된 옛날 옛적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의 부모님을 통해 이어가고 있답니다.

Steve Kim
Stev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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