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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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치마 차림으로 쫓겨난 군주 부인, 그리셀다 (3)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21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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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살루초의 군주가 그리셀다의 집을 방문하여 결혼을 신청하는 장면1. 그리셀다로부터 남편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복종하겠다는 서약을 받고 미리 준비해간 옷을 갈아입히느라 그리셀다의 시골집 앞이 분주한 모습. 1493-1500년대 작품.
1907년에 브랜더 매튜스(1852-1929)가 번역한 데카메론의 열째 날의 열 번 째 이야기인 그리셀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살루초 지역에서 후작의 지위를 이어받은 구알티에리라는 젊은 군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자녀를 얻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며, 오로지 매를 훈련시키고 사냥하는 것을 즐기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만 제외하면 아주 총명한 군주라는 평판을 얻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가신들은 군주의 이런 생활을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군주에게 대를 이어갈 후사가 없으면 자신이 섬길 군주도 없고, 희망도 없어지기 때문에 하인과 그의 친척들은 결혼하도록 여러 차례 권고를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군주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충성스런 동료들이여,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길 좋아하고, 그런 이유로 나를 속박하려고 하지만 내 취향에 딱 맞는 여자를 구하고 또 내가 제시하는 조건에 동의하는 여자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 보았는가?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자기 뜻에 맞지 않은 여자를 얻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괴롭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지 아는가!”
“게다가 그의 부모를 보면 딸자식을 알 수 있다는 듯이 내 마음에 들만한 여자를 구하겠다고 들 하는데, 그것 또한 어리석은 짓이야.
자네들이 어떻게 처녀의 아버지가 갖고 있는 숨겨진 성벽을 알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어머니의 성격과 체질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난 그런 말을 이해할 수 없네.
설사 양친에 대해서 알았다 치더라도 딸이 부모를 닮지 않은 일도 많지 않은가? 그러나 자네들이 굳이 결혼이란 속박으로 나를 붙들어 맬 작정이라면 그 요청을 거부하지 않겠네.
아울러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기보다 내 자신이 직접 찾아보겠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여자가 내 아내로서 여러분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여자라면, 그 때는 여러분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기 싫은 결혼을 한 것이 얼마나 중대한 오류를 초래한 것인지 그 책임을 분명히 할 것이라네”
그러나 충성스런 신하들은 군주가 결혼할 마음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군주는 궁전에서 멀지 않은 한 마을에 가난한 농부의 얌전하고 아름다운 딸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매우 아름답게 보여 그녀와 결혼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주저함도 없이 처녀의 아버지를 불러 논의하고 그녀를 아내로 맞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결정을 내리자 군주는 영지내의 영주, 백작, 친구들을 소집했습니다. 이들이 모두 모이자 군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나는 부인을 얻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마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 될 거라 믿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원했다기 보다 여러분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나는 예전에 여러분이 약속한 것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내가 어떤 여인을 맞이하든 여러분은 군주의 부인으로서 존경하고 복종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그 약속을 실천하고, 여러분 또한 나와의 약속을 지켜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나는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한 처녀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 쏙 들고 호감 가는 그 처녀를 아내로 맞을 것이며 수일 내로 그 처녀를 이 궁전으로 데려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혼식이 매우 화려하면서도 정중한 것이 되도록 신경을 써주기 바라며, 나 또한 여러분에게 약속한대로 실천한 것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군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영주와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면서 군주의 부인으로서 화려하고 장엄하게 예식을 거행하고 진심으로 부인을 모시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이들은 군주가 마음에 들도록 호화롭고 웅장한 잔치를 준비하였고, 군주는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의 친척, 동료, 지인 모두를 초대하여 특별하고 격조 있는 결혼식이 되도록 계획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부가 될 우아하고 젊은 처녀와 몸집과 키가 비슷한 아가씨를 골라 몸에 딱 맞는 값비싸고 화려한 의상들도 만들도록 했습니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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