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인생을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Ⅰ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인생을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Ⅰ
  • 이지수 기자
  • 승인 2019.09.03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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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사유담 이사] 나는 욕심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능력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태어나보니 누더기를 입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먹고사는건 힘든 것일까요?

아버지는 도금쟁이였고 언제나 일을 했지만 먹고사는것 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그릴 수가 있냐면서 사람들은 제 그림재주를 놀라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림도 밥벌어먹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궁전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그 날로 짐을 싸서 궁정화가의 도제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노예처럼 일해야 했습니다. 그 놈은 나를 키워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그 놈을 위하여 남 좋은일 하고싶지 않습니다. 나는 박차고 이탈리아로 갔습니다. 그 곳엔 그림 그리는 사람이 꽤나 대접을 받았습니다. 나는 빠르게 이탈리아의 맑은 그림을 배워나갔습니다. 제가 또 배우는 건 금방입니다. 그림이 뭐 다르겠습니까? 사람들 좋아하는대로 찍어버리면 그게 그림입니다. 누가 돈이 있나 살펴서 그 사람을 집중적으로 예쁘게 그려주면 지가 그렇게 생긴줄 알고 쌈지돈까지 밀어줍니다. 쉬운 일입니다.

그렇게 초상화로 한참 돈을 벌다가 한 사람을 알게됩니다. 베이유라는 사람입니다. 집안도 좋고 실력도 뛰어나 국립왕실화가협회의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한참 왕실에 납품하던 테피스트리(양탄자) 초안을 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탐이 났습니다. 나도 왕실에 들어설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탈리아 가기 전 그림으로는 마드리드에서 빠지지 않았던 저는 여러 차례 그림을 살롱에 출품했습니다. 그러나 근본 없고 빽 없고 돈 없는 제 그림을 눈여겨 봐줄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바로 베이유에게 저의 모든 것을 걸었지요. 곧 베이유의 여동생과 결혼했고 왕의 초상을 그리게 됩니다.

드디어 입성했습니다. 궁전화가가 되었습니다. 이제 수석화가까지는 일도 아닙니다. 저는 그림을 잘 그려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더러운 팔자는 스스로 발목을 잡습니다. 저는 감기에 몇 일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콜레라에 걸렸고 더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비밀로 했습니다. 이제 40대 중반 한창시절인데 이건 너무나 가혹한 것 아닙니까? 이래저래 속이며 저는 궁전수석화가가 되었습니다. 다행이 귀도 조금씩 돌아와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꿈꾸던 궁전생활은 우수웠습니다. 고귀한 영혼들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개천에서 자란 내 눈에도 우스웠습니다. 왕비는 아들 나이뻘의 군인과 바람을 피워 자식을 낳고 그 군인은 재상이 됩니다. 바보같은 왕은 매일 술에 취해보입니다. 왕족들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은 지들끼리 결혼을 해서 어느 날 사촌이 부부가 되고 태어나는 것들도 흉칙한 병을 가지고 태어나 대부분 어린 나이에 죽었습니다.

이 곳이 과연 내가 그토록 꿈꾸던 곳인가? 나는 항상 서러움에 쩌들어 이를 갈며 성공을 찾아 절력질주 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존중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나는 쩌는 질투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궁전에는 내가 원하는 고귀함은 없었습니다.

궁전에 들어서면서 나를 돌아보게 한 건 단 한사람, 벨라스케스 였습니다. 그 사람 그림 속엔 사람이 있었더군요. 저처럼 돈받고 그린 그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삶을 담아놨다고 할까? 그 충격은 붓을 들고 기교를 부리는 나를 한참 멈추게 했습니다. 그 분의 인격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것같지만 그래도 나의 롤모델로 삼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림 속 왼편에 보면 제가 벨라스케스처럼 화판을 세우고 서있지요? 사람은 격을 타고나야 하는 모양입니다. 나 같은건 이미 글렀을지도 모릅니다.

내가누 구냐구요? 고야입니다.

#사유담 #고야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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