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사람답게 살아 그대 살라망카 II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사람답게 살아 그대 살라망카 II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9.0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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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의 집 Casa de las Conchas
조개의 집 Casa de las Conchas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에 정오의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다. 길을 따라 가니 벽을 온통 조개로 가득 매운 특이한 건물이 나온다. 다른 것도 아닌 왠 조개가 있는 걸까? 스페인에선 조개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최근 방송에서도 수차례 소개된 바 있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가는 길, 바로 산띠아고 순례길을 가는 순례자의 상징이 조개이다. 조개로 가득해서 건물의 이름도 그대로 조개의 집, 까사 데 라스 꼰차스 Casa de las Conchas 라고 부른다.

조개의 집은 스페인의 국토통일을 이룬 다음 해인 1493년, 산띠아고 기사단 일원이자 법대 교수였던 로드리고 말도나도 데 딸라베라가 시작해, 1517년 그의 아들 로드리고 아리얀스 말도나도에게로 이어진다. 300여개에 달하는 큼지막한 가리비가 열과 오를 맞춰 도톰하게 장식되어 있어, 살라망카를 대표하는 또하나의 상징물이 되었다. 순례자들이 살라망카를 지나갈 때마다 멀리서 이 건물을 보면 고단한 여정 중에도 반가움에 제법 큰 힘을 얻었을 듯 하다.

조개의 집 장식
조개의 집 장식

멋진 귀족의 저택은 이후 사회에 기증되고 관리를 받아 현재는 살라망카 공공 도서관으로 쓰여지고 있다. 밖에서 연신 사진만 찍을게 아니라 잠시 들어가 스페인 지방 도서관의 수준도 가늠해 보거나 사르륵 넘겨가는 책소리에 귀를 기울여 인문학 도시의 분위기에 잠시 젖어보는 것도 좋겠다. 언어의 넘사벽을 넘어 현지인의 지적 느낌 물씬 나는 곳에서 마음을 둘러 보면, 그만큼 이 여정의 의미도 한층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조개의 집에서 나와 보니 거리에는 식당에서 내놓은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꽉 찼다. 따사로운 볕의 영향이 커서 그런걸까. 조용히 음미하기 보다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숨 한번 안 내쉬고 쏟아내는 저들의 말보다도 더 눈에 띄는 여기저기 휘휘 내젓는 손짓과 팔동작. 가만 지켜보면 스페인에선 이른바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를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인간미가 풀풀 풍긴다. 타고난 기질이 그렇게나 다를까 싶을 정도로 그들의 유쾌함과 여유는 따라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살라망카 마요르 광장
살라망카 마요르 광장

그 길을 죽 따라 가니 살라망카의 피날레를 장식할 마요르 광장이 나온다. 마요르 광장은 스페인 광장 만큼이나 스페인의 각 도시와 마을마다 있는데, 그 중 살라망카의 마요르 광장은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이름나 있다. 1729년부터 1755년까지 1차, 2차에 걸쳐 조성된 마요르 광장은 추리게라와 끼뇨네스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졌고, 이곳 시민들에게 ‘살라망카의 거실’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Steve kim
Steve kim

도심지에 큰 정사각형으로 탁 트인 광장, 여기에 구름 한점 없는 하늘까지... 커피가 나를 부른다. 테라스 의자에 앉아 거품 풍성한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해 본다. 옆에 혼자 온 분에게 올라! 반갑게 인사하며 말을 건내본다. 스페인의 햇살은 사람을 불러내는 마법이 있다. 방구석 안 커튼 뒤에 숨는게 아니라 밖으로 끄집어 내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이 있다. 만나서 각자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지 않는다. 기분 좋게 웃으며 건낸 인사로 일상의 나눔을 자연스레 이끈다. 그러면 이곳은 더는 각박한 세상이 아니다. 사람이 사랍답게 살만한 곳이 된다. 바로 지금, 여기, 우리는 살라망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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