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인생을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Ⅱ
[에뜨랑제의 SNS 미술관] 인생을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Ⅱ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승인 2019.09.10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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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사유담 이사] 왕가의 가족사진에 화가 따위가 들어갈 수 있느냐구요?

설득했죠. 우연하게도 13명의 왕가 사람들이 서있지요? 13은 불길한 숫자이니 제가 끼어들어 14가 되면 안정적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렇게 역대 최고의 가족사진이 만들어졌습니다.

내 사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바보같은 왕, 합죽이 같은 왕비, 하늘색 옷의 철 모르는 고도이, 왕점을 달고있는 왕의 누이까지 괴물같지만 그들은 화려한 옷에 눈이 멀어 극찬을 했습니다. 바보들입니다. 나는 짤릴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어느 미술사가가  말하길 떼돈을 벌어들인 빵장수 일가족 같다고 했다던데 귀신같은 평가입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왕은 저 그림속보다 더 멍청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나름에 최선을 다한 작품입니다.

곧 스페인에 나폴레옹이 밀려들어옵니다. 어쩌면 가족사진을 그리던 그때가 스페인 왕가의 마지막 평탄한 시절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1908년 프랑스 군대는 왕과 왕비 그리고 재상이자 왕비의 정부였던 고도이를 불러들여 협상을 할 것처럼 강금해 두고 마드리드를 점령했습니다. 왕세자 페르디난도 7세는 발렌시아성에 갇혀 있었습니다. 문제는 심각했지만 저는 왕실화가이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곧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트르가 왕이 됩니다. 호세 1세라고 했습니다. 저는 호세 1세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의리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저는 직장인이고 시키는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남들도 바뀐 현실에 맞추어 잘만 살아가던데 저를 향한 비난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나는 나름 강한 멘탈의 약은 인간인데 나도 뭔가 떨떠름해졌습니다.

나는 커튼을 내린 집에 웅크리고 들어앉았습니다. 하루는 화가 나고 하루는 두렵고 하루는 기가 막혔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하루한날 편하게 다리 뻗고 잔 적이 없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적이었습니다. 근본없이 태어난 나는 믿을 곳이라고는 내 자신 뿐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았답니까?

그 잘난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130점이었지요? 저는 800점이 넘어갑니다. 그 외에도 나의 기여도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나에게 도대체 왜 비난의 칼날을 꽂는 건가요? 미쳐버릴 것 같아서 벽에 온통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내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사실 프랑스를 위해 일하면서 뭔가 울컥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내가 부끄러워보였습니다. 나는 사실 슬펐습니다. 긴 세월 비난과 맞섯고 열등감과 싸웠고 자존감은 지하에 두었던 저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스페인은 국가였던 모양입니다. 나는 뼈 빠지게 일했을 뿐 가치로운 삶은 이루지 못한 껍데기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게 1814년 페르디난도7세 왕세자가 스페인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버려진 저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를 그리던 손으로 피맺힌 스페인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5월 2일에는 학살당하는 사람들을 그렸고 5월3일에는 프랑스 군대에 맞서는 막대기와 농기구를 든 시민군을 그렸습니다.

죽기 직전의 모습이고 그들이 살 확률은 없으나, 그러나 가치로운 시민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나는 내 모든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정작 그리고 싶은 그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늦었던 모양입니다. 박쥐같은 나를 스페인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로 떠났고 프랑스에서 쓸쓸히 죽었습니다. 나에게 1908년 5월 3일은 작품이 아니라 반성문이었습니다.
나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스페인이여?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났습니다. 삶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나는 성공보다는 만족을 잡고 싶습니다. 빛나는 내일이 있다는 허황된 꿈의 미끼를 따라가지 않고 만원 벌어 딱 9900원을 쓰고 내일에 100원을 남겨두고 편안해 하겠습니다.
나는 오늘을 항상 두려워한 바보로 남았습니다.

#사유담 #고야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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