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돈키호테를 찾아 Ⅰ, 뿌에르또 라삐세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돈키호테를 찾아 Ⅰ, 뿌에르또 라삐세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9.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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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박물관 내부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스페인에 오기 전까지 그는 내게 이름만 알려진 인물이었다. 돈키호테, 아니 알론소 끼하노 어르신. 세르반테스의 기사 소설 속 주인공은 이제 만화와 영화, 뮤지컬, 발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돈키호테는 어떤 인물일까.

돈키호테가 활동을 펼쳤던 카스티야 라만차 지방을 찾아가 본다. 그곳에 가면 마을마다 전부 돈키호테 조형물을 세워두고 저마다 돈키호테와 관련된 단서를 제시한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상의 인물이 이렇게까지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니. 심지어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을 ‘굳이’ 보러 해외에서까지 찾아오다니. 막상 보고 나면 감탄 보다는 약간의 실망을 가져갈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도 기어코 발걸음을 옮겨본다. 무엇 때문일까. 문학과 문화의 힘은 이성과 논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돈키호테 박물관 내부
돈키호테 박물관 내부

라 만차 지방에서 녹색 표지판에 흰색으로 X자 표시를 한 ‘돈키호테의 길’ Ruta del Quijote 을 따라가 보면 뿌에르또 라삐세 Puerto Lápice 라는 인구가 겨우 천 명 남짓한 시골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는 돈키호테가 기사 서품식을 치룬 곳이자 여관인 벤타 델 키호테 Venta del Quijote 가 있다. 마드리드에서 안달루시아로 내려갈 때 거쳐 가는 곳이라 항상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식당과 기념품 매장이 연결된 그 곳엔 무료 입장 박물관이 마련되어 있다. 무료로 개방된 공간이지만 예상 외로 세심히 공들여 자료를 수집하고 장면을 재현해 놓아 돈키호테 기분을 내며 사진으로 담아두기에 손색이 없다. 식당 앞에 있는 비쩍 마른 돈키호테 동상은 무심히 사진 모델이 되어 열일을 한다. 심지어 식당 귀퉁이에는 돈키호테 내용을 깨알보다 더 작은 글씨로 깜지 마냥 종이 한 장에 채운 작품도 있다.

박물관 내 돈키호테 모형

나처럼 깡 마르고, 덥수룩한 수염에, 제몸도 건사하기 힘들어 보이는 돈키호테. 아니 알론소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못나 보이기만 한 그를 담아가는 걸까. 측은함에서 나온 연민과 동정일까, 아니면 이상을 향해 실행하는 뚝심과 용기에 대한 찬사일까.  

뮤지컬 라 만차의 사나이에 나오는 이룰 수 없는 꿈이란 가사를 곱씹어 본다. 걸핏하면 주위의 환경에 휩쓸리는 나약한 나를 볼 때, 돈키호테가 가진 불굴의 용기는 그 어떤 웅변과 설득 보다 강력하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종이 한 장에 적은 돈키호테 소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Steve kim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이룰 수 없는 꿈 가사 전문

 

돈키호테의 진심어린 말에 멀리 찾아온 나는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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