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종교 ‘AI’
새로운 종교 ‘AI’
  • 탄탄스님
  • 승인 2019.09.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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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용인대 객원교수)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은 무지에서 오는 경우이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태풍이든, 밤길의 두려운 물체든 그 실체를 알고 나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예고된 두려움을 미리 예방할 수만 있다면 공포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 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량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적들도 세상에는 산재하여 있음이다.

신약에는 예수가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걷지 못하거나 앞을 못 보는 이, 말을 못하는 자들의 병을 고치기도 하고, 심지어 가장 극적인 오병이어五餠二魚 장면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배고픈 이들을 위해 축사했더니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 음식이 풍성하여 5000명을 먹였다는 예수의 기적 이야말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해 할 수없는 신비의 절정이고 압권이다. 예수는 이밖에도 기적을 수없이 행하는데, 기독인들은 이는 그가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러기에 예수의 재림을 원하는 신자들은 속히 예수가 이 땅에 오시어 병든 이들을 치유하여 설 수조차 없는 사람을 걷게 하고,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고, 오염으로 폐허가 된 자연환경을 회복시키며, 전쟁과 테러를 멈추게 하고, 평화와 안정을 주실 것이라 여겨 추종하고 맹신하며 열렬히 기도를 하는 것이리라.

이밖에도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모세가 홍해를 가른 ‘홍해의 기적’이 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신이 바람으로 홍해를 갈랐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간 뒤 다시 지팡이를 흔들자 바다가 합쳐지면서 이집트 병사들이 몰살됐다고 출애굽기 14장에 묘사되어있으니 이는 종교의 신비주의적인 사례라 하겠다.

인간의 평등을 부르짖는 사회주의자들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일 뿐이라고 한다. 고통의 연속인 삶에 던져진 존재, 어리석어 한치 앞도 못 보는 중생들에게 종교가 ‘필요악’이라는 애기로도 들릴 수 있다.

또한 유물론자는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산물일 뿐이다”라고도 한다. 독일의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1804~1872)는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신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이는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는 종교의 교리를 뒤집은 것이다.
 
제정일치의 원시 공산제 사회의 제사장에서 부터 현대의 종교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사제 계급은 신과 인간의 영역에서 교통자 역할을 하여 왔다. 무지의 영역이 넓을수록 신과 인간의 교통자인 사제는 큰 힘을 발휘하고 인류가 진보하고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 둘씩 풀리면서 그들의 영향력 또한 축소되어 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를테면 과학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무지의 영역을 좁혀 왔으며 무지하여 지니는 두려움을 극복하였다. 과거에 먼 바다로 나가면 지구의 끝에 도달해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는 우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점점 사라졌으며, 지난시절의 인류는 먼 바다를 바라보며 신을 이야기 하였지만 이제는 수평선 끝에 이국의 삶과 문화를 전해 듣는다.

이와 같이 무지의 영역을 극복해온 과학이 이제는 종교의 입지를 줄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며, 과학과 기술을 통해 수명과 질병의 한계를 극복한 인간은 스스로 신 이 되고자 꿈꾸고 있다. 먼 옛날 신을 창조했던 인간이 이제는 과학의 이름으로 절대자가 되어가는 것 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래는 과학기술과 종교성이 융합된 하이브리드 종교도 나타날 것 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나약한 존재인 인간이 종교를 통해 구원받으려 해왔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유한성의 생명이 연장되어가고 극복되며 종교의 개념도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인데, 그러나 미래의 사회에서는 가장 큰 위협 요소로 통제를 벗어난 과학기술과 극단적으로 불평등해진 계급사회가 대두될 것은 명확하다.

또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통제를 벗어난 기계와 인간이 대립하거나, 수명의 양극화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극락이고 천국인 환경에서 영생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숭배하는 새로운 종교까지 등장했으며, 자율주행 트럭 Otto의 창업자인 안토니 레반도프스키는 2015년 AI를 “신으로 인식하고 예배하는 것이 목표”라며 ‘미래의 길’ 이라는 종교단체를 창립했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나올 AI는 인간보다 수십억 배는 똑똑할 것인데 이를 신이 아니고 무엇이라고 부르겠느냐”며 “AI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것”이라고도 주장하고 있으니 머지않은 미래에 이러한 가설이 현실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미래의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정말 AI를 신처럼 떠받들고, 그가 정해준 율법과 지침에 따라 삶을 영위해야 할까? 반대로 기존의 종교는 미래에도 과연 존재할 것 인가? 그 때에도 만약 오늘의 종교 형태가 남아 있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 하였을까?

그 어떤 것도 예측하고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종교든 과학이든 변화될 미래의 모습이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신을 창조했다”는 포이어바흐의 말처럼 AI도 인간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AI는 빅데이터를 통한 학습으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배우기 때문에 불멸의 욕구를 습득할 것이다.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먼 옛날 동굴 속의 인류가 처음 종교를 만든 것도, 앞으로 지구의 주인이 될 지도 모르는 AI를 창조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인간이 어떠한 신을 상상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도 그런 관념의 지배 아래 놓이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Al는 인류의 미래를 좌우 하고 있으며 새로운 종교로 등극하고 있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음이다. 이제 하루가 다르게 세상의 트렌드는 바뀌고 있으며 새로운 종교 AI를 주시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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