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克日),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
극일(克日),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
  • 탄탄스님
  • 승인 2019.09.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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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용인대 객원교수)

현대의 일본인은 간결미와 단순미를 찾고자하며 심지어는 정돈과 정리를 위한 책까지 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정리정돈 하는 삶의 방식에는 이견이 없으나 삶속에서 모든 것을 도(道) 라고 여기며 사는 철저하게 계산된 태도에서는 인간미를 엿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도를 찾으려는 것은 그야말로 완벽을 지향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어디 완벽이 있을 손가? 그네들은 무술도 무도라 하고 서예를 서도(書道)라 하며 생활 속 다반사인 차를 마시는 행위조차도 다도(茶道)라 하며 절차와 형식에 철저하고 자세한 지침까지 마련하는 걸 보며 한편으로는 높이 평가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 그 철저히 계산된 가치관에는 오히려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국인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걸 대단히 어리석게 여긴다. 실제로 청소도 대충 어지간히 하려든다. 그러니 일본인들이 청소조차 ‘소제의 도’라 여기듯 청소에서도 도가 있음을 여겨 대충 하는 법이 없이 철저하게 끝내려 한다는 걸 납득하기가 어려운 점이다. 이러한 국민성을 직시 하여야 일본인을 이해하는데 다소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한국인의 정서는 청소에는 끝이란 있을 수 없고 또 다시 어지러 지기 마련임을 간파하고 철저함 보다는 대충 끝내고 보는데, 일본인이 청소에서 조차 완벽함을 추구하고 정리정돈된 엄격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조차도 그러한 태도를 견지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말하자면, 상대방의 실수나 허물조차 이해하거나 용서하지 않겠다는 철저함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신의 실수나 허물조차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 테니, 상대에게도 용서를 구하지 않으려는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무술에서 패배자의 말은 변명일 뿐이니, 꼭 꺾어야 하고 한 치의 오차 없이 계산된 행위들을 하는 일본인의 사고와 그들의 태도에서 한국인은 늘 피곤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차를 마시며 고담준론을 나누기 보다는 속 편하게 사는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편안함을 추구하기 마련인데 무릎을 꿇고 불편하게 원칙과 방법을 우선하여 긴장하며 마시는 차 마심을 ‘다도’라 선호하려는 것, 자유분방한 현대인들은 이러한 불편한 다도를 애써 애호하거나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충 마시고 즐기면 될 차 문화를 다도라 여겨 규범과 규칙을 만드는 것도 피곤이 상존하는 현대인들이 더욱 다도를 멀리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철저함과 청결성은 일본인이 전후 패전을 극복하고 산업사회를 이끈 원동력이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섬세하고 미세하기조차 한 분야에서 일본제품이 탁월하고 우수한 이유에는 철저함과 ‘확고부동한 원칙’도 내재되어 있었음이 배제 할 수 없는 이유이다.

한국인의 소탈함을 일본 문화의 철저함에 비유하고자하는 것은 잠시 군부의 통치시기에 우리도 그렇게 일념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일로 매진하여 일중독을 마다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러 그 철저함을 상당기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산업사회에 진입한 배경에는 일본의 그러한 문화를 흠모하고 답습하려했던 ‘문화모방’의 흔적도 있었음이 사실이다.

그동안 잘 살아보기 위해서 그러한 철저함으로 무장된 이면에, 한국인들이 어느 날부터 하루아침에 소탈함을 저버린 것은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산업사회의 철두철미한 철저함으로 농경사회의 소탈함이 멀어진 이후 많은 사회적 문제가 양산되고 일본문화의 부정적인 결과들을 무비판 적으로 답습하여 왔다.

인간미 보다 계산된 ‘사무라이 문화’가 어느덧 우리에게도 어느 순간 다가온 것이며 냉전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에도 돌이켜 보면 균형 있는 사색이 따라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성찰해 보아야 한다.

일본인은 ‘다다미 문화’가 있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긴장이 생활화 되어 유아기 때부터 배변훈련에서도 철저할 수밖에 없다. 짚을 엮어 만든 다다미는 이물질을 만나면 그 순간 부패를 시작하기에 철저하고 완벽하리만치 긴장된 교육을 받았기에 그러한 격식과 법도를 늘 수행하는 일본인의 정신세계는 정신의 피로감 못지않게 ‘분열의 조짐’도 잔존하고 있다고 보는 것 이다.

누적된 스트레스 사회인 일본인들이 그러한 정신 분열을 일으키고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보면 한국인과의 차이점을 쉽사리 이해하기 마련이다.

일례로 술자리에 상대의 실수를 너그러이 관용으로 ‘술김에 한 일이니’ 하고 덮어 주는 아량을 이해 못하는 일본인은 술자리에서 조차도 검을 차고 잔뜩 긴장하여 마시다 보니 술자리에서 조차도 긴장이완이란 있을 수 없는 과거를 살아 온 이들이다.

상대의 술 정에 칼을 빼드는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는 인간미보다 이렇게 철저히 계산된 상하 복속의 ‘정복자와 지배자’, ‘힘센 자와 약자’의 복속문화 이기에 일본을 이기지 못한다면 오히려 피해를 당할 수 있다.

그들의 야심에 복속되지 않고자 한다면 지정학적으로 가장 근접해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칼 문화와 생활에서도 도를 강조하려는 그 철저히 계산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그들의 음흉한 ‘복속의 문화’에 예속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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