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자, 발로 뛴 단군답사기 펴냈다”
“국학자, 발로 뛴 단군답사기 펴냈다”
윤한주 박사, 국내외 단군 사묘 총망라 『한국의 단군 사묘』발간
전국을 4개 권역 나눠 서산 단군전 등 총 46곳의 단군 사묘 소개
  • 김일환 기자
  • 승인 2019.10.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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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 김일환 기자] 국내 46곳에 건립된 단군 사묘를 답사한 책이 나왔다.

사묘(祀廟)란 영정이나 위패 등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지역 단군 사묘에서 개천절마다 제례를 봉행하고 있지만 전체 개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한주 국학박사는 2017년 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단군 사묘을 조사한 『한국의 단군 사묘(도서출판 덕주)』를 펴냈다고 밝혔다.

윤 박사는 “학계에서 이강오 전북대 교수가 1980년까지 30여 사묘를 조사한 연구가 유일하다. 현장에 가보니 10개 정도는 사라진 상태였다. 안내판이 없거나 내용이 잘못된 경우도 많았다. 관련자를 인터뷰하고 새로운 자료를 통해 내용을 바로 잡았다. 1980년 이후에 설립한 단군 사묘도 모두 조사했다”라고 말했다.

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단군 사묘는 총 46곳에 건립됐다. 1909년부터 광복 이전까지 6곳이고 광복 이후부터 1999년까지 31곳이다. 2000년 이후에도 9곳이 더 건립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으로 살펴보면 대전·충청도 14곳, 대구·경상도 7곳, 광주·전라도 16곳, 강원도 2곳, 서울 4곳, 경기도 3곳이다.

대전광역시와 충청도는 서산 와우리 단군전(1913), 충주 묵동마을 숭령전(1947), 논산 개태사 창운각(1947), 증평 단군전(1948), 부여 장정마을 천조궁(1949), 논산 대종교 청동시교당(1960), 서산 옥녀봉 단군전(1964), 대전 서구 단묘(1964), 청원 은적산 단군성전(1968), 괴산 흥천사 단군전(1992), 공주 태상전(1998), 공주 단군성전(2001), 영동 선교 국조전(2006), 금산 참나도원 대웅전(2006) 등이다.

단군 사묘가 전국적으로 세워진 배경은 1905년 일제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 이후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국조 단군인식이 언론을 중심으로 국민들에게 확산하였기 때문이다. 단군기원을 사용했고 단군 영정을 모집했다. 단군에 관한 책들이 연이어 출간됐다. 단군 사묘의 건립 또한 단군운동의 일환이었다.

충남서산 단군전(도서출판 덕주)
충남서산 단군전(도서출판 덕주)

이진탁(李鎭澤)은 1913년 충남 논산군 두마면(옛 계룡산 신도안) 작산마을에 단군전을 세운 것은 지역 단군전 건립의 효시였다. 일제는 민족의식 유포 혐의로 이진탁을 3개월 동안 투옥했다. 광복 후 지역 주민들은 단군영모계를 설립하여 어천절과 개천절에 제향을 올렸지만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1976년 이곳에 저수지가 조성되면서 단군전은 철거됐다.

김용학(金容學)은 1913년 충남 서산 와우리에 초가를 짓고 단군 영정을 모신 뒤 천진궁(天眞宮)이라고 했다. 그는 이 곳에서 봄가을에 단군 제향을 올렸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됐다. 광복 후 지역 유지들의 협조를 얻어 천진궁을 다시 세웠지만 당시의 천진궁은 남아 있지 않다. 현 단군전은 1987년 운산면에서 새로 건립한 것이다.

윤 박사는 “일제는 단군을 구심으로 한민족이 결속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단군은 황당한 전설이라고 왜곡해서 가르쳤다. 단군 유적지를 파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이것이 민족말살정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은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단군을 정신적 가치로 삼았다. 그러한 정신으로 단군 사묘를 건립하였고 광복 이후로도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단군 사묘는 황해도 구월산에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삼성사가 있다. 평양 숭령전은 단군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의 세종이 세웠다. 묘향산 단군굴에도 광복 후에 사당을 건립한 것으로 확인했다.
 
주목할 점은 일본에도 단군 사묘가 있다는 점이다. 그 주역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왜군에 끌려간 조선의 도공(陶工)들이다. 이들은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에 단군을 모신 옥산궁(玉山宮)을 건립했다. 사당을 건립한 8월 15일마다 큰 축제를 벌여 화합과 번영을 다짐했다.

저자 윤한주 박사
저자 윤한주 박사

윤 박사는 “조선인들은 옥산궁에서 매년 제사를 지냈다. 조선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으며 떡과 과일을 서로 나누어 먹고 이웃에 음식을 싸서 보내는 등 고향의 예절을 잊지 않았다”라며 “옥산궁은 적지에 세운 사당이었지만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의지처였다”고 설명했다.

책은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총 46곳의 단군 사묘를 소개했다. 전라도민은 국조를 모시는 것은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단군사묘를 건립하자는 주장이 신문에 보도됐을 정도다. 경상도는 경상남도 문화재인 밀양 천진궁과 『칠곡군지』1면을 차지하는 칠곡 국조전 등 단군 사묘에 관해서 지역민의 자부심이 많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단군 사묘가 박물관에 있다.

4개 권역이 마칠 때마다 쉬어가는 코너로 단군 ‘에피소드’를 실었다. 단군의 탄신절과 어천절의 근거를 문헌으로 제시했다. 임시정부에서 단군이 나라를 건국한 10월 3일을 건국기원절로 제정한 내력을 밝혔다.
 

윤 박사는 “유서 깊은 사찰이나 향교에 관한 책은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단군 사묘에 관해서는 안내서조차 찾기 힘들다”라며 “선조들은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사묘를 건립했다. 우리 고장의 소중한 문화재인 단군 사묘를 찾아 선조의 뜻을 기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저자는 충남 천안에 소재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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