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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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치마 차림으로 쫓겨난 군주 부인, 그리셀다 (4)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22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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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 많은 그리셀다 이야기 2.
마침내 약속된 결혼식 날이 다가오자 군주는 아침 아홉시 반쯤 이미 기다리는 축하객 앞에서 말에 올라타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여러분. 신부를 맞이하러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군주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신부의 아버지가 살고있는 가난한 마을로 갔습니다.
군주는 신부의 집으로 가는 길에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신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물을 길어다 놓고 다른 마을처녀들과 함께 군주가 오는 것을 보기 위해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구알티에리 군주는 그녀를 보자 그리셀다라고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수줍은 말투로 말했습니다.
“나의 존경하는 군주님. 아버지는 집에 계십니다”
그러자 군주는 말에서 내려 수행한 사람들을 밖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혼자서 초라한 시골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집안에 있던 잔누쿨라라는 처녀의 아버지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훌륭한 아버님. 나는 그리셀다와 결혼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그녀를 당신 앞에 불러 놓고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녀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그리셀다. 내가 그대를 아내로 맞이하면 늘 내 마음이 흡족하도록 해줄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떤 행동, 어떤 말을 하든 화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예의바르고 겸손하며 인내할 수 있겠는가?”
여러 가지의 물음에 그녀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은총이 그녀에게 부여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군주는 그녀의 손을 잡아 밖으로 데리고 나와 기다리고 있던 수행원과 일행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가 입었던 옷을 손수 벗기고 새로 지어온 스모킹 자수로 수놓은 의상으로 갈아 입히고 머리를 땋아 어깨까지 늘어트린 다음에 황금의 왕관을 머리에 씌워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셀다, 그대는 나를 남편으로 맞이하겠는가?”
그녀는 아주 겸손하게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대답했습니다.
“네, 자비로우신 군주님. 비천한 여인을 신부로 맞이하시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그리셀다. 나도 그대를 아내로 맞이하겠소. 이 신성한 키스로 그대는 나의 아내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바이오”
이렇게 해서 군주는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청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우유처럼 흰 승용마에 태워 정중하게 궁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군주의 궁전에서는 드디어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과 연회가 베풀어졌는데 그것은 마치 프랑스 왕의 공주를 맞이할 때만큼이나 화려한 것이었습니다.
젊은 신부는 의상이 바뀌고 마음가짐과 예절이 아주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전과 같이 얼굴과 마음가짐, 자태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것은 한층 우아하고 품위가 있게 보여 양치기 잔누쿨라의 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예전에도 잘 알고 있었던 귀족의 딸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군주에게 순종하며 의지를 잘 받들어왔기 때문에 자신을 이 세상에서 더 없이 행복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군주의 가신들에게도 매우 인자하고 친절하게 대했기 때문에 누구 한사람도 그녀를 존경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극진하게 예우를 하지 않는 자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그녀의 행복과 건강과 평화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구알티에리 군주가 그런 아내를 맞이했다고 빈축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남자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군주 이외에는 누추한 외모와 허술한 의복 아래 감추어있던 그녀의 헌신과 정숙함 등 고매한 자질을 알아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죠.
결혼 전에는 군주에 대해서 비난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지만, 주변 지방에서는 그녀를 통해서 군주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게 만들었고, 아울러 사람들이 그녀의 행복을 바라게 만들었기 때문이겠죠.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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