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물리적으로 손·발 묶는 꼴의 ‘훈령’
[사설] 물리적으로 손·발 묶는 꼴의 ‘훈령’
  • 충남일보
  • 승인 2019.11.0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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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뭐가 두려워서 그런지 언론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취지에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훈령을 만들었다. 사건 관계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검찰 수사 상황을 전면 비공개하고, 오보 언론에 대한 처벌 수단도 마련한 게 훈령 골자다.

훈령이기 때문에 입법예고 절차없이 예비적으로 적용되고 내 달부터는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새 훈령이 ‘국민의 알 권리’를 철저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게 문제다. 규정을 시행하는 방법도 자의적이라는 비판에서 비켜가기 어렵게 됐다.

훈령대로라면 취재기자는 검사·수사관 등 검찰 관계자와 접촉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게다가 오보를 내는 해당 기자는 검찰청 출입을 금지시키겠다는 발상 자체도 너무 일방적이다. 이를테면 취재를 봉쇄해 놓고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나 하라는 식이다. 더구나 심각한 오보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고 오보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두 일방적인 듯 하다. 지금까지는 오보인지 아닌지는 언론중재위원회나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 절차를 거쳐야 확정됐다.

그 누구도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언론 보도의 당사자가 오보 판정을 내릴 권한이 없었다. 과거 독재정권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던 수법이나 마찬가지라 5공시절 ‘보도지침’을 떠올리게 한다. 공보 담당자로 지정된 사람만 만나 그가 알려 주는 것만 받아 쓰도록 한다면 취재하는 기자가 아니라 적어준 대로 옮기는 필경사가 되라는 것이다.

언론을 정부 홍보기구로 격하시키는 반민주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피의자 인권은 보장돼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국민의 알권리를 저해해서도 곤란하다. 법무부가 훈령을 내세워 비판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는 비난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법무부는 관련 기관의 의견 수렴을 거쳤다고 설명했지만,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협의를 하거나 의견을 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검찰 훈령이어서 의견을 내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회신했고, 대검은 출입금지 제한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훈령은 법조·언론계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확정한 데다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한국기자협회도 “법무부의 이번 훈령이 언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한다”면서 “훈령이 시행되면 수사 기관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검찰 수사가 아무런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고 진행되는 건 국민에게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언론의 정서적 압박을 넘어 물리적으로 손발을 묶는 것과 같은 전근대적 발상이여 법무부는 훈령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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