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선악과를 왜 만드셨을까?
[양형주 칼럼] 선악과를 왜 만드셨을까?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9.11.0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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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는 선악과를 왜 만드셨을까? 구약성서 창세기를 읽다보면 대다수 사람들이 갖는 질문이다.

조물주는 모든 것을 다 아실텐데, 그렇다면 사람이 선악과 따먹을 줄을 알면서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둔 것은 사람을 일부러 골탕 먹이기 위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신앙에 마음을 열기가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선악과를 왜 만드셨을까?
첫째, 선악의 나무를 두신 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는 행동은 무조건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선악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열매를 금하신 것은, 사람은 선악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한계가 있는 피조물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선악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 아니다. 이것은 조물주가 해야 하는 몫이다.

만약 인간이 선악의 판단자가 되면 자기의 유익에 따라 선악의 기준을 제멋대로 바꾸게 된다. 선악의 기준, 곧 법 위에 인간의 탐욕이 자리할 때, 그 자리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 악을 휘두르는 무서운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셋째, 선악과를 만들고 금하신 것은, 우리의 삶에는 함부로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조물주와 인간 사이의 선한 관계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데드 라인이 된다.

우리의 인간 관계도 이런저런 종류의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들이 있다. 말 한마디로, 행동 하나로 우리는 종종 관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이런 것들은 우리 삶의 선악과와 같다.

넷째, 선악과는 진정한 사랑과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선악과는 관계가 무너질 위험을 감수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다.
영화 미녀와 야수에 보면, 야수는 아름다운 여인 벨이 있어야 자신이 걸린 마법을 깰 수 있다. 그러나 벨이 아버지를 보고싶어하자, 영원히 야수로 남는 저주를 각오하고 기꺼이 벨을 보내주지 않는가?

여기에 참된 사랑이 있다. 사랑은 로보트처럼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선악과는 우리 삶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현실임을 보여준다. 선악과, 그리 멀리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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