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관계의 달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사회
[양형주 칼럼] 관계의 달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사회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9.11.1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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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월드 엔터테인먼트(SeaWorld Entertainment)는 미국 5개 주에 12개의 해양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큰 회사다.

동종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증시에 상장해 기업가치 25억 달러(약 2조 9250억 원)로 평가받을 정도로 성장가능성과 가치를 인정받았다.
2013년 7월, 당시 이 회사의 주가는 30달러였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이 회사의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것은 2013년 7월 10일 개봉한 7만 6000달러짜리 저예산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쉬(blackfish)’ 때문이다.
이 영화는 2010년 씨월드 올랜도 파크에서 범고래가 쇼를 진행하는 조련사를 끌고 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익사시킨 사고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씨월드측이 범고래를 가혹하게 훈련시켰던 점을 지적했다. 잊혔던 사건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이 영화를 본 시민과 언론은 씨월드를 향하여 비난을 쏟아 부었다.

예기치 못했던 비난 여론에 대하여 씨월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먼저, 씨월드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에 바빴다. 씨월드가 지난 50년간 동물 보호에 헌신한 점을 강변했다.
둘째, 씨월드는 일부 과격한 비난을 쏟아 붓는 이들을 과장된 여론으로 거짓을 퍼뜨리는 이들로 비난했다. 그러나 결과는 더 큰 역풍을 불러왔고 결국 CEO는 사임하고 말았다.

씨월드의 범고래 사건이 일어난 것과 비슷한 시기인 2010년 1월 12일에는 카리브해의 빈국 아이티에 진도 7.0의 지진이 났다.
20만 명이 사망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 여행회사 로열 캐리비안 인터내셔널 크루즈는 지진이 일어난 후 3일 뒤에 크루즈를 정박시키고 3000명의 관광객들에게 사유지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도록 했다.

물론 예전에 예정된 일정이었지만, 언론은 ‘지진이 일어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곳에 관광을 즐긴다’고 비난을 쏟아부었다.
소셜미디어도 뜨겁게 반응했다. 그러자 로열 캐리비안은 사과하며 아이티에 100만달러를 기부하고, 크루즈선을 통해 구호품을 실어날랐다. 그러자 여론이 급격히 반전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현대 사회의 위기가 종종 예기치 못한 통제 밖의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벌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의도치 않던 갑작스런 사건으로 비난을 받을 때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변명과 정당함에 호소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처방은 종종 더 큰 역풍을 불러온다. 이럴 때일수록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모습으로 다가가지 않고는 더 큰 뭇매를 맞기 쉽다.
핵심은 섬기는 종의 자세로 상대의 마음을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관계는 언제라도 예기치 못한 때 갑작스런 이유로 틀어질 수 있다.

관계의 달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나의 공감력과 겸손은 얼마나 되는가? 이런 태도로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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