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여긴 어디요 까사 바뜨요 Ⅱ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여긴 어디요 까사 바뜨요 Ⅱ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11.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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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바뜨요 야경.
까사 바뜨요 야경.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친절하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본다. 직원들도 어느 정도 한국인들이 눈에 익었는지 그냥 Where are you from? 보다는 Korea? 라고 가늠을 해 본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어가 담긴 단말기를 건낸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상당히 커졌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연간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 8000 여만명 - 괜히 관광대국이 아니다 -  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스페인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인 방문객은 50 만명이 채 안 되니, 스페인 여행객 전체에서는 1%도 안 된다. 

그럼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스페인이 아닌 한국에 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유명 관광지는 가는 곳마다 한국인을 쉽게 만난다. 게다가 간단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현지인들도 본다. 와서 그냥 호텔과 식당에만 머물거나 자연경관만 보고 가면 모르겠지만 부지런한 국민성 만큼이나 짧은 일정에도 대성당이며 미술관, 왕궁과 같은 유적을 찾아다니며 입장료를 내서 잠깐이라도 훑어보고 가니 현지인들에게 인상이 강하게 남겨진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다시 까사 바뜨요 내부로 들어가서 받은 단말기를 살펴보니 단순히 설명만 나열하는게 아닌 설명하고 있는 사물에 화면을 맞춰보면 증강현실을 만들어 더욱 실감나게 만들어주는 마법상자였다. 어린이 마냥 동심에 들뜨고 흥미진진해져 설명에 따라 계단을 밟고 올라가 보았다. 건물의 아래층서부터 하늘빛의 타일 장식은 시작됐다. 우리에겐 그저 화장실에나 쓰일 것 같은 타일이 실은 세월이 아무리 흐른다 해도 변치 않을 고가의 실내건축자재라 가우디 선생님에겐 너무도 탐이나는 물건이었다. 세라믹 소재의 그 비싼 재료를 가우디는 부유층의 집을 재건축 하면서 원없이 써 본듯 싶다. 왜 그랬을까? 갑의 주문이었을까, 을의 제안이었을까? 

까사 바뜨요 내부 통로.
까사 바뜨요 내부 통로.

바다를 테마로 한 까사 바뜨요는 밖에서는 바다거북과 용을 연상시키며 타일을 조각조각내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붙이더니, 안에서는 바닷빛을 그라데이션으로 흰색, 하늘색 등으로 연하게 시작해서 올라갈 수록 짙푸른 군청색과 남색의 타일로 수를 놓았다. 자연의 바다는 내려갈수록 짙어지는데, 가우디의 바다는 반대로 올라갈수록 농도가 더해진다. 나처럼 초대받은 손님이 집구경을 할 때 아래서부터 시작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

1층, 우리식으로 2층의 메인홀은 가우디 특유의 구불거리는 자연미 넘치는 곡선으로 바닥과 유리창을 이어 매끄럽게 하나로 흐르는 느낌을 던져준다. 창 윗부분은 푸른색 계열의 동글동글 원을 두어 숲과 바다가 만나는 것 같은 독특함을 선사한다. 평평하지 않은 천장에 반사된 채색유리창의 색이 투영되자 홀로그램 홀에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가우디 선생님이 계셨다면 웬지 그 진중한 얼굴에서 ‘봤지, 봤지, 난 이런 것도 그냥 허투루 두지 않았다우’ 하며 너털웃음 한번 지었을 것만 같다.

계단 따라 올라가는 층층마다 있는 방문의 손잡이 마저도 어쩌면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게 내 손, 아니 정확히 말해 문을 잡는 엄지, 검지, 중지 딱 이 세 손가락에만 맞게 만들었는지, 나도 모르게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방망이 깎던 노인’ 작품이 퍼뜩 생각났다. 구엘 공원의 벤치는 내 엉치를 편안하게 반겨주더니 내가 살 집도 아닌 바뜨요 씨 집의 방문은 손을 맞잡아 준다. 가우디 선생님은 그냥 건물을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야무지게 한 살림살이 하셨던 분임에 틀림없다.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그냥 알아서 쓸 문 손잡이까지도 신경 쓰신 분이신데, 아무렴. 결혼 하셨더라면 사모님께서 좀 피곤하시진 않았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마저 해 본다.

까사 바뜨요 테라스.
까사 바뜨요 테라스.

몇 층 더 올라가니 드디어 용의 비늘 덮인 옥상이자 테라스가 나온다. 굴뚝이 마치 팬플룻처럼 나란히 묶여진 상태로 뜨랑까디스 기법인 깨진 타일로 꾸며졌다. 심해(深海)서부터 물살을 가르고 왔으나 결국엔 조르디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 전설의 용을 가우디는 머리도 꼬리도 없이 몸통의 비늘만을 묘사한 것으로도 충분히 그 느낌을 살렸다. 밖에서 바라보던 푸른색의 용솟음 치던 기운은 어디 갔는지 햇볕에 바짝 말라버린 듯한 갈색으로 용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가우디 선생님이 작심하고 만든 동화의 나라, 까사 바뜨요에서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바닷 속 탐험을 마치고 용을 무찔렀던 기사에서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와 보니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사단을 만들어 다시 와야겠다.

Stev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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