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각자도생
[양형주 칼럼] 각자도생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9.12.2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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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各自圖生),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한자(漢字)지만, 놀랍게도 이는 중국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아니다. 

중국 고사성어에 각자도생이란 말은 없다. 그럼 어디에서부터 등장하는가? 우리나라다. 각자도생은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네 번이나 등장한다. 내용들은 하나같이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유린되고 기근으로 도탄에 빠지자, 백성들이 더 이상 조정을 바라보지 않고, 각자 살길을 도모하기 시작했다는 식이다. 

조정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바보라는 의식이 생기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 각자 살 길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백성들은 각자도생의 오랜 역사를 갖고 각자도생의 생존 DNA를 뼛속까지 새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자도생할 때는 아무도 믿지 못한다.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핏줄, 가족 밖에 없다.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도 결국은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우리 가족이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다.관직에 오르면 그 관직을 이용하여 국가를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살 길을 찾는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일수록 부정부패가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무리 부동산을 억눌러도 그럴수록 불안가운데 각자 도생을 도모하는 전투의지가 치열해진다. 앞으로 나라와 세계의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은 혼란의 시대가 계속된다면, 이런 각자 도생의 풍조는 기승을 부릴 것이다. 

각자도생은 결국 공동체를 풍성하게 할 자원을 각자가 갉아먹는 것이다. 각자도생의 방식으로는 결국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하여, 우리 사회가 황폐해지는 결과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각자도생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 겨우 생존하기에 급급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넉넉하고 서로가 쓰러지지 않도록 의지할 존재가 되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더불어 풍성하게 살아가려면 어떤 변화가 우리 사회에 필요할까? 사회, 정치, 경제, 문화가 2020년 한해에는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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