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새해 전망] ‘갈길 먼 지방분권’ 해법 없나
[2020 새해 전망] ‘갈길 먼 지방분권’ 해법 없나
낮은 재정자립도 향상, 도시-농촌 양극화 해소 관건
자치단체장 견제 수단 한계…주민소환제 등 개선 시급
넉넉한 자치 재정 확보, 시민중심의 분권만이 ‘살 길’
  • 한내국 기자
  • 승인 2020.01.01 0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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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30년.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다. 소멸되는 지방과 배불리는 도시. 고령화로 슬럼화가 빨라지는 농촌과 지방자치단체의 고사를 막을 방법은 없나. 지방분권만이 답이다. 지금처럼 예산을 움켜쥔 중앙정부가 시어머니노릇을 하는 한 지방분권은 요원하다.

과밀과 슬럼화의 괴리는 예산주도권을 쥔 중앙정부가 원인이다. 그런만큼 지방분권은 행정권한의 분산과 함께 신속한 자립기반을 키우는 것이 답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인구과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의 마법 탓인지 이 현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반면 지방은 재정 부족에다 인구 감소로 허덕이고 있다. 머지않은 시간에 일부 지자체는 소멸할지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돈다.

지방분권 30년을 맞았지만, 서울을 제외한 지방 시·도는 모두 ‘시골’로 불리는 실정이다.

한국 지방자치는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 7월 4일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듬해 6·25 전쟁이 터지면서 늦춰지기는 했지만, 정전협정 체결 1년여 전인 1952년 4∼5월 전국 광역시·도와 시·읍·면에 지방의회가 처음으로 구성됐다. 시·읍·면장도 주민 직선으로 뽑았지만 시·도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해 완전한 지방자치라고 보기는 아직 어려웠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출범한 제2공화국 장면 정부에서야 비로소 시·도지사까지 주민이 직접 뽑는 전면적 지방자치제도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1년 후인 1961년 5·16 쿠데타로 지방의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지방자치 실시 일정 등이 담긴 개정 지방자치법이 1990년 1월 1일을 기해 발효하면서 지자제는 한세대 만에 부활했다.

그런 영욕의 지자제가 내년이면 30년을 맞는다. 하지만 아직도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지방세로 공무원 월급을 해결하지 못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는 씁쓸한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지방재정 통합 공개시스템인 ‘지방재정 365’를 보면 전국 17개 시·도의 올해 평균 재정자립도는 51.4%이다. 2017년 53.7%, 지난해 53.4%보다 낮다.

지역 격차도 크다. 서울과 경기는 각 82.2%, 72.7%에 달하지만, 하위 5위권의 재정자립도를 보면 충북 35.9%, 경북 31.9%, 강원 28.6%, 전북 26.5%, 전남 25.7%이다.

기초자치단체 상황은 더 열악하다. 전국 226개 시·군·구 중 149곳(66%)은 10∼30% 미만, 59곳(26%)은 30∼50% 미만이다.

전남 함평(9.9%)이나 경북 봉화(9%), 전남 구례(8.7%), 전남 신안(8.5%), 충북 보은(7.7%)처럼 재정자립도가 10% 미만인 곳도 5곳(2%)이나 된다.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나랏돈에 의존하는 곳이다.

재정자립도가 50%를 웃도는 시·군·구는 13곳(5.8%)인데, 서울 강남·중구·서초·종로, 경기 화성·성남·용인·이천·하남·수원·안산·과천 등 모두 수도권 지자체다.

지자체는 재정 자립도를 올리려고 세수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재원 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체납정리반을 구성, 밀린 세금 징수에 나서는 것뿐이다. 지방세수를 늘릴 수 있는 추가 세원 확보는 하늘의 별 따기다.

충북도와 강원도는 시멘트 생산지역 환경오염 저감 및 주민 간접 보상 재원을 마련하려고 ‘시멘트 지역자원시설세’ 신설에 나섰으나 국회 상임위원회 벽을 넘지 못했다.

장기간 저장된 원자력시설 내 방사성폐기물에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지방세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지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재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국고 보조사업도 지속해 증가하고 있다. 지자체 재정을 옥죄는 요인이다. 대표적 사업으로는 기초연금, 생계급여, 영유아 보육료, 노인 일자리 사업, 아동수당 등이 꼽힌다.

충북도의 경우 기초연금 총액은 6천151억인데, 이 가운데 지방비가 무려 21%(1293억 원)에 달한다.

내년부터 시행될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도 마찬가지인데, 전북도와 시·군은 총사업비 378억 원의 30%인 114억 원을 부담해야 한다. 없는 살림이 더 빠듯해지는 셈이다.

인구마저 감소하고 있다. 청년들의 이탈, 고령화로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된 마을이 많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6∼2018년 통폐합된 전국 초·중·고교가 161개교나 된다.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대전시는 수도권에서 이전하는 공공기관·기업의 무주택 직원들에게 아파트 물량의 5%를 우선 분양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부산시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 1천명에게 연 10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경북 김천시의 직원들은 밤마다 다세대 주택을 찾아다니며 미전입 가구를 대상으로 전입을 호소하고 있다.

전남 화순 아산초등학교는 학생 유치를 위해 학생과 가족에게 관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난임 시술비, 결혼 축하금, 전입 장려금, 육아비를 지원하는 곳은 허다하고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이자를 대신 내주는 곳도 있다.

그러나 소멸 위험지역은 늘고 있다. 이제는 이 용어가 낯설지도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지수 2019’에 따르면 올해 10월 주민등록 기준, 97개 시·군·구가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42.9%이다. 2017년 84곳, 지난해 89곳보다 증가한 수치다.

충북의 경우 분만 시설이 없어 임산부들이 이웃 지자체로 가야 하는 기초자치단체도 단양, 보은, 옥천, 증평, 괴산, 음성 등 6곳이나 된다.

지자체 입장에서 지방자치제가 ‘허울 좋은 외투’일 뿐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국방·외교·통상·통일 정책을 맡고 그 외의 권한은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야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답은 ‘재정독립·시민중심 자치’다

주민 복지 사무를 처리하는 것은 지자체의 헌법상 역할로 그 근간은 ‘재원’이다. 그런데도 국비 외 자체 수입을 늘릴 마땅한 묘책이 없는 게 전국 모든 지자체의 현실이다.

내년도 예산편성 철이 지난 요즘 충북도 농정국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농민단체가 발의해 도에 제출한 농민수당 조례안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농민단체 요구대로 도내 7만5천여 농가에 월 1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려면 연간 900억 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이는 도 농정예산의 16%에 해당한다.

예산 구조조정을 하거나 절감 방안을 찾아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조례가 제정돼도 충북도가 실행하기 어렵다.

지방정부는 자치입법권을 갖고 있지만 범위가 매우 제한돼 있다. 법률에 근거 없이 지자체 조례만으로는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

따라서 지자체와 지방의회는 주민에게 혜택을 주는 조례만 제정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지방 재정난을 가중하는 원인이 된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제2공화국(1960~1961) 장면 정부에서 전면 실시됐다가 5·16 군사 쿠데타로 폐지된 지방자치제가 1990년 부활한 지 내년이면 30년이 된다.

하지만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정책과 법령을 집행하는 하급 기관 역할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 균형 발전 및 지방분권 분야 대선 공약에는 지방의 재정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계획이 포함돼 있다. 8대 2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6대 4 수준으로 바꾸는 게 핵심 내용이다.

국세인 ‘환경개선부담금’이나 ‘주세’ 등을 지방세로 넘기고 영유아 무상교육, 기초연금과 같은 보편적 복지 예산에 대한 국비 부담을 대폭 올리는 내용도 담겨 있다.

박재율 지방분권전국회의 상임공동대표는 "지방정부의 재정이 중앙정부가 나눠주는 국세 위주로 꾸려진다는 점에서 주민 주도로 지역발전을 모색하는 게 어렵다"며 "정부 공약대로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6대 4 수준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풀뿌리 주민 운동은 활성화된 편이다. 러브호텔 반대 투쟁이나 자치단체장·지방의원 대상 판공비 공개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충북 보은에서는 일본 아베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산 정상혁 군수에 대해 주민소환 투표 청구 서명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 통제 기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낮은 투표율 탓이다.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SRF 반대 어머니회’는 생활폐기물 에너지화시설 가동과 관련한 민원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시의원 2명에 대한 주민소환을 청구했으나 투표율이 개표 요건(33.33%)을 밑도는 21.75%에 그치면서 무산됐다.

2017년에는 ‘경북 군위 통합이전 대구공항 유치반대추진위원회’가 김영만 군위군수 주민소환을 추진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각하됐다.

유치반대추진위가 주민 서명부를 제출했으나 군위군 선거관리위원회 검토 결과 유효 서명이 주민 수의 15%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관영 좋은예산센터 이사는 "주민소환제는 주민이 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주민의 33%가 평일 이뤄지는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하고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광역자치단체 내 기초자치단체의 균형 발전을 유도하는 것도 지방자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다.

충남의 경우 전체 인구 212만4천여명 중 60%가 천안, 아산, 당진, 서산 등 북부권에 집중돼 있다.

대기업이나 제조공장이 위치했기 때문인데, 북부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나머지 지역에서는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시·도의 도시별 인구 차이 역시 크다. 대도시권과 주변 중소 도시, 농촌을 연결하는 거점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공공서비스와 생활 인프라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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