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칼럼] 흥겨운 경자년, 흥하는 대한민국
[임은정 칼럼] 흥겨운 경자년, 흥하는 대한민국
  •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
  • 승인 2020.01.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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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한국문학 번역가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의 신년 인터뷰를 접했다. 우리말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은 ‘흥(興)’이라는 그의 말에 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관통하는 말로 흔히 언급되는 것이 ‘한(恨)’이다.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온 반도인들의 설움을 응축한 단어로, 외국어로 그 느낌을 정확하게 번역하기 힘들다고들 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는 것은, 도대체 우리 민족의 대표정서가 ‘한’이라고 언제 누가 그런 생각을 심어주었나 라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10년 이상, 일본에서 10년 가까이 산 필자로서는 한국을 다녀갈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흥이 넘치는 사람들이 없구나!’ 새삼 놀라곤 했다. 그리고 그 흥이 결국 지금의 경제와 문화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권위 있는 영화제들에서 기록을 세우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나 신곡 발매 후 순식간에 각종 차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방탄소년단만 보더라도 우리의 ‘흥’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예술상품으로 승화된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흥이 많은 민족이기에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던 36년의 역사에도, 형제자매가 서로를 살육하는 처참함 속에서도 기어코 다시 ‘흥’하고 말았던 것이리라.

22년 동안 고국을 떠나 있다 비로소 완전 귀국을 하고 보니, 우리 국민들은 여전히 흥이 넘치고 재기가 발랄한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우울함을 입에 담는 것이 못내 불편하게 느껴지곤 한다.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고 희망이 없다고, 이러다 곧 망할 것 같다느니, 공산화될 것이라느니, 핵전쟁이 날 것이라느니 온갖 끔찍한 시나리오들을 입에 올린다. 우울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영혼을 지치게 하는 법이거늘,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공포를 나르고 재확산시키고 있다.

기실 자본주의는 99퍼센트의 구성원에게 친절하지 않고, 시장경제는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며, 민주주의는 지리한 공방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고도성장은 끝난 지 오래고, 인구감소도 이제는 진행형이다. 강대국은 우리의 자존심을 상처내고, 적대국은 우리의 생존을 호시탐탐 위협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들일 뿐, 그 자체가 우리의 미래를 단정 짓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난관 속에서도 결국은 살아남았고 흥하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그 역사의 주인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긍지여야 한다. 그 긍지가 굳건히 뿌리 내리고 있을 때 우리의 미래도 아름답게 꽃피고 열매 맺을 것이다.

이번 주에는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있고, 흰쥐의 해인 경자년(庚子年)이 밝아온다. 민족의 명절을 맞이하고 본격적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 우리 국민들이 한보다는 흥을 나누며 한 해를 신명나게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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