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미명에 보지도 알지도 듣지도 못했던 것을 통해 나를 찾아 주셨던 그 날의 황당함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하셨지만 지금의 나를 통해 되돌아보는 과정 속의 나는 기억하기가 싫습니다.
부질없이 넘나들었던 월선(越線) 앞에서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와서 (그때는 왜 그랬지?) 라는 의문은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고 나 홀로 풀어가야 하는 나머지 공부는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습니다.
하나를 풀어 둘로 이음새를 만들고 이 둘을 풀어 다시 셋과 넷으로 이어가고는 있지만 한 번 엉킨 매듭의 끝은 어디쯤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이제는 짐작조차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나온 날보다 남은 날이 적을 것 같은 생각에 그저 마음길만 바쁘고 옥죄어 오는 삶의 터울은 믿음의 지경에 관한 것도 자꾸만 고개를 젓게 합니다.
한번 채워진 차꼬를 풀어낸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다시 나를 보십시오. 그러면 그때부터 새로운 감사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입이 마른다는 것은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이고 앞엣것도 보지 못하면서 다가올 것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은 교만입니다. 그렇기에 부름을 받고 은사를 통해 거룩한 권능을 받았어도 길이 엇갈려 열매가 없다면 수고의 시간이 있어도 우리의 삶은 황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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