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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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치마 차림으로 쫓겨난 군주 부인, 그리셀다 (5)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25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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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살루초의 군주가 친정으로 되돌아간 그리셀다를 방문하여 머지않아 새 신부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하고, 궁으로 와서 결혼 준비를 도맡아달라며 그녀의 인내심을 마지막으로 시험하는 장면. 1493-1500년경 작품.
한편, 구알티에리 군주와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그녀는 임신을 하여 딸을 낳았습니다. 군주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때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아내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주어 부인의 인내심을 시험해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싫은 소리도 하고 화도 내고, 신하들이 그녀의 낮은 신분과 교육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여자아이를 낳았다고 신하들이 불평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리셀다는 군주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어질고 착한 그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명예롭고 인자하신 군주님. 당신의 위엄이 유지되고 당신이 만족할 수 있도록 나를 처리하세요. 나는 군주님의 백성보다 신분이 낮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에 지금과 같이 얻고 있는 명예가 나에게는 과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무슨 일이든 만족하고 있어요. 군주님의 명예가 손상되지 않도록 군주님의 의지대로 나를 처리하기 바래요”
이러한 대답을 들은 군주는 부인이 남들로부터 받고 있는 명예에 대해서 조금도 자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군주는 부인이 딸을 낳은 것에 신하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하 한 사람을 부인에게 보냈습니다.
“부인, 제가 목숨을 유지하려면 군주님께서 소인에게 명령하신 지시사항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군주님의 명령은 다름이 아니라 부인의 아기씨를 빼앗은 다음에…”
신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신하로부터 말을 전해들은 부인은 그의 난처한 표정을 살펴보고 또 남편이 예전에 한 말을 상기하면서 남편이 이 자를 시켜 딸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부인은 갑자기 요람에 있던 아이를 꺼내 입맞춤을 하고 축복을 내리면서 마음 속에는 안타까운 모성애로 슬픔이 들끓었으나 표정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하인의 팔에 아이를 안겨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받아요. 그래서 자네와 나의 군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세요. 그런데 새나 날짐승 밥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 군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부디 그렇게는 하지 말아주세요”
아이를 안고 나간 신하로부터 부인의 말을 전해들은 군주는 아내의 의연한 태도에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신하를 시켜 친척이 살고 있는 볼로냐의 한 백작 집에 애를 보내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양육시킬 것을 지시하면서도 군주의 딸이라는 것을 비밀로 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서 부인은 다시 임신을 하여 왕자를 낳았습니다. 군주보다 기쁜 사람은 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인을 시험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내를 괴롭히려고 어느 날 예전보다 더 심한 말을 했습니다.
“그리셀다, 당신이 왕자를 낳으니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오. 그러나 내 신하들은 장차 가난한 농부인 잔누쿨라의 손자 따위를 자신들의 군주이자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며 악의적인 불평을 늘어놓고 있으며, 불만족스러워하고 있소. 그러니 지난번처럼 어린애를 버리지 않으면 내가 이 곳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르오. 또 마지막에 가서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당신과 헤어지고 다른 아내를 맞이해야만 할지도 모르겠소”
부인은 고뇌하며 참을성 있게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혜롭고 위대하신 군주님. 왕실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뜻대로 하세요. 내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이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군주는 딸의 경우와 같은 방식으로 하인을 시켜 아들도 죽인 것처럼 해놓고 볼로냐에 있는 백작 집으로 보내 잘 양육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부인은 얼굴 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불평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에 항의하는 그녀와 같은 여자는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자식들을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자녀들을 죽인다는 말에도 선뜻 내준 것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도 해석되고 애착이 없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주는 그와 반대로 부인이 매우 영리했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었을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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