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칼럼] 생존의 원리와 패배의 원리
[김성윤 칼럼] 생존의 원리와 패배의 원리
  • 김성윤 前 단국대학교 법정대학장/現 단국대학교 명예 교수
  • 승인 2020.02.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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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말을 하고자 한다면 옳은 생각의 바탕 위에서 말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옳은 생각이란 어떤 생각일까? 옳은 생각이란 잔 머리를 굴리는 생각이 아닌 바른 삶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이다. 바른 말을 펼치고자 한다면 바른 생각을 바탕에 두어야 한다.

바른 생각이란 머리에 가득 채우는 지식이 아닌 내 바른 삶을 밑거름 삼으면서 가다듬는 생각이어야 한다. 정유(丁酉)년 9월15일에 충무공이 쓴 난중일기에는 죽기로 작정하면 반드시 살고, 살기로 작정 하면 반드시 죽는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이야 말로 충무공이 처한 상황에서 보면 옳은 생각이요, 바른 생각이다. 그러나 보통사람에게는 쉬운 생각이 아니다. 충무공은 왜군과의 전투 때 열악한 환경 때문에 거의 승리의 가능성이 없는 위기에 몰려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불굴의 신념으로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였다. 그러한 정신력의 바탕에는 사생결단 (生死決斷)이 있었다. 다음 이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아예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결단해야 한다는 각오로 싸워서 승리하였다. 

군인이 전쟁터에 나아가서 살아남을 궁리를 하고도 무사 했던 일이 있었던가? 그리되면 살아남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길이다. 이와 반대로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 길이 열렸다. 이 같은 진리는 전쟁터에서만 통하는 진리가 아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수없이 부딪치는 수많은 어려운 일을 극복하여 가는데 이 진리만큼 통하는 말을 나는 이제껏 본 일이 없다. 우리는 어려운 고비에 처하였을 때 일수록 죽음을 각오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싸우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인생의 각오 중에 죽을 각오처럼 무서운 각오는 없다. 이 각오가 서 있느냐? 안 서 있느냐? 이것이 승패를 가가르는 원리요, 생존의 원리이다. 민주 투사인 유석 조병옥(趙炳玉)박사는 이 말을 아주 좋아 했다고 한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독재 세력과 맞서 싸웠기 때문에 뛰어난 민주적 투사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오늘의 야당에서는 이런 투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죽기를 각오하고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봉사하고 대여 투쟁을 하기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만을 갈망하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더욱이 야당은 사분오열로 분열되어 있다. 

그러고도 힘을 가진 여당에 이기기를 바란다면 산에다 배를 띄우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더욱이 오는 4.15총선에 뛰겠다는 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여야를 불문하고 신상품이 별로 없다. 우선 국가의 정책의제를 이해할 지식을 갖춘 인물, 불의를 미워하는 곧은 정신의 소유자,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균형 감각이 있는 사람, 정의감과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눈에 잘 안 띈다. 

여야를 불문하고 이런 인물이 공천되어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생사결단 (生死決斷)이란 말처럼 죽고 살기를 돌보지 않는 비장한 각오로 선거에 임하는 마음과 결의를 평소 국민과 사회를 위해서 십분의 일만 하였어도 선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런 정치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정신과 자세로 유권자를 대하여 왔다면 선거에서 필승을 거둘 것이요, 유권자들의 많은 응원이 있으리라고 본다. 만약 그러하지 못했다면 자연도태가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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