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을 비난하는 자들
불법(佛法)을 비난하는 자들
  • 탄탄스님
  • 승인 2020.02.1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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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용인대 객원교수)

당송 팔대가중 한사람으로 문장과 학식이 뛰어났으나 불교가 번성하던 시대적 상황을 늘 언짢아했던 한유(韓愈)는 “부모가 물려주신 소중한 신체의 한 부분인 머리를 깎고 무위도식을 하는 승려는 민중의 적이요 위대한 중화문명을 희석시키는 한낫 오랑캐의 사특(邪慝)한 술수일 따름”이라며 벼슬길에 오르고는 더욱 불교를 비방하는 일에 몰두하여 글을 지어 조정에 올리니 황제의 미움을 받아 한직으로 좌천되었다.

독실한 불심천자 헌종이 불골(佛骨)을 궁중으로 맞아들이려고 하였을 때, 그는 <불골을 논하는 표(諫迎佛骨表)>를 올려 그것을 막으려 했다. 한유에게 대노(大怒)한 헌종은 당장 재상(宰相) 배도를 불러 감히 조정을 비난하고 있는 한유를 반드시 죽여야겠다고 했다.

“짐이 불교를 너무 믿는다고 했다면 그래도 용서할 수 있지만 불교를 믿는 황제는 모두 오래가지 못한다고 했으니 이건 짐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한 가지만으로도 한유를 용서할 수 없단 말이오.”

이에 대해 재상이 한유를 변호해 주어 사형만을 모면한 채 조주(潮州, 지금의 광둥(廣東)성 차오저우 자사(刺史)로 좌천당했다.

조주 땅에 쫒겨온 한유는 그 고을 태전 선사가 생불(生佛)로 추앙과 흠모를 한몸에 받고 있음에 일조지분(一朝之忿)하여 선사를 요절낼 계책을 마련한다.

그러나 이유 없이 승려를 박해 한다는 여론을 의식하여서 조심스럽게 꾸민 계략이 미인계(美人計)였으니, 자고로 사내란 미인에게 약한 법, 더구나 여인과 교합을 금하는 계율을 지켜야 하는 승려를 파계(破戒)케 하여 승려의 위선과 불교의 타락을 만천하에 드러나길 바라는 한유는 자색(姿色)이 고운 이름난 기생 홍련에게 백일 후 태전 선사를 파계시키도록 한 후 이를 어길 시 상을 주겠지만 파계를 시키지 못할 경우 치도곤(治盜棍)을 내겠다고 겁박을 하며 은밀하게 명하였다.

홍련은 그 길로 몸뚱이에 온갖 치장을 하여 산중에 머무는 선사를 찾아 인사를 한후 절에서 기거하며 백일기도를 약속한 후 그날부터 선사를 유혹하려, 선사께서 좌정(坐定)하여 삼매(三昧)에 들면 살며시 다가와 분 내음을 풍기고, 어쩔 때는 실수로 넘어진 척하며 품에 안기기도 하며 야심한 밤에는 야릇한 속옷 바람으로 짐승소리가 무섭다며 처소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행력이 뛰어난 선사는 이러한 홍련의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자, 오히려 홍련은 선사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지니게 되었으나 조주 자사 한유의 명을 받들지 못하고 선사를 파계하는 유혹에 실패하였으니 쳐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웠던 홍련의 이러한 심정을 이해한 선사는 홍련의 붉은 치맛자락을 잡아당겨 먹을 듬뿍 묻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치맛자락에 글을 지어 써 내렸다.

“산속에서 저자를 내려가지 않은 10년, 색(色)이 곧 공(空)함을 알았네. 어찌 조계(曹溪)의 한 방울 물을 홍련의 잎사귀 위에 떨구리오.”

이 글을 자사 한유에게 보여주니, 홍련의 치맛자락에 적힌 글귀를 읽은 한유는 느낀 바 있어 선사를 찾아 암자에 이르고 선사는 한유에게 자사께서는 “불가의 어느 경전을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한유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태전 선사는 한유를 준엄히 꾸짖었다.

“어찌하여 불교를 비방하고 수행자의 수행을 방해하였는가? 어느 누구의 명령이나 사주를 받고 불교를 비방하였다면 주인의 명령을 잘 따르는 개와 다름없으며 스스로의 의지로 비방을 하였다면 불교의 가르침도 모르며 비방한 것이니, 스스로를 속인 것이고 글을 배운 자이며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의 도리가 아니요.”

선사의 말씀에 크게 뉘우친 한유는 이후 불교에 귀의하여 뛰어난 필력으로 불교를 선양하고 불교와, 가르침과, 스님네를 찬탄하는 명문장을 수없이 남겼다.

항간에 어떠한 이유로 종단으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또는 산문에서 쫒겨난 인사들이 어울리며 패를 지어 그들이 한때 몸담았던 종단을 비방하고 의리를 저버리며 현 종단의 구성원들을 맹 비난하는 금수만도 못한 행위를 자행하는 몇몇 질 떨어지는 인사들이 있다.

더구나 진정한 붓다의 가르침을 호도하는 한줌도 안 되고 하찮은 인터넷 찌라시에 종사하며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연명하는 마구니도 지난날의 한유와 같은 부류이다. 진실된 수행을 해보거나 바른 가르침도 이해 하지 못한 자들에게 진정으로 조고각하(照顧脚下)하기를 바랄 뿐이다.

가증스러운 위선과 단순하게 먹고살기 위해 불법을 망치려 드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호법 신장은 가혹한 철퇴로 응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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