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4월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 부부 선정
독립기념관, 4월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 부부 선정
  • 박민영 기자
  • 승인 2020.03.3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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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광선, 정현숙.
왼쪽부터 오광선, 정현숙.

[충남일보 박민영 기자]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을 2020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31일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오광선은 1896년 경기도 용인 원삼면에서 태어났으며, 1913년 이웃 마을 출신 정현숙과 결혼했다. 의병장이었던 부친 영향으로 일찌감치 독립운동에 뜻을 품은 그는 1915년 중국으로 망명했고, 이때 본명인 성묵(性黙) 대신에 ‘조선의 광복을 되찾겠다’는 뜻의 광선(光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 1918년 졸업 후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에 매진했다. 

1920년대 초 대한독립군단 중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자유시참변으로 인해 이르쿠츠크 군형무소에 수감되어 혹한의 고통을 겪은 후 가까스로 탈출했다. 1931년에는 한국독립군 중대장으로 임명되어 한중 연합의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전자령전투 등의 각종 항일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에는 관내로 이동,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특별반에서 군관양성활동을 펼쳤으며, 1936년경에는 베이징에서 비밀공작 활동을 벌이던 중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광복군 국내지대장 등을 맡았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다.

정현숙은 1900년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에서 태어났다. 

남편 오광선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던 이듬해인 1919년 남편의 뒤를 이어 만주로 망명길을 떠났으며, 고국에 남긴 가족들의 안전을 우려해 본명 정산(正山) 대신에 현숙(賢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만주 땅에서 화전을 일구는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독립군들을 뒷바라지해주었기에 ‘만주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일전쟁 발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피난길에 오르게 되자, 당시 일제에 체포된 남편 오광선을 대신해 삼남매를 데리고 피난생활에 합류했다. 이후 충칭 인근의 토교에 정착해 임시정부 요인의 식구들과 함께 거주하며 임시정부 활동을 뒷바라지하였다. 이때 한국혁명여성동맹의 맹원이자 한국독립당의 당원으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그 영향을 받은 두 딸 역시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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