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22
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22
속치마 차림으로 쫓겨난 군주 부인, 그리셀다 (6)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3.26 1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년 이탈리아에서 공연된 오페라 그리셀다의 한 장면.
그러나 진실을 알 수 없던 신하들은 군주가 친자식을 죽였다고 생각하며 비난하기 시작했고 냉혹한 사내라고도 했습니다. 반면에 부인에 대해서는 동정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은 이와 같이 죽은 애들에게 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다른 부인들에게 자신으로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자식을 낳은 남편이 하는 일이니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만 말했습니다.
자식들이 태어난 지 많은 세월이 지나가자 군주는 아내의 인내심을 마지막으로 시험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주는 신하를 보내서 그리셀다를 더 이상 군주의 아내로 데리고 살 수 없다,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것은 젊은 시절에 저지른 잘못이었다, 그러니 교황의 허락을 얻는 대로 그리셀다를 집으로 보내고 다른 신부를 맞이하겠다는 말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군주를 더욱 더 비난했습니다. 군주는 이 같은 비난에도 새 신부를 맞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덕성을 갖추었기에 이런 말을 전해들은 부인은 마침내 친정으로 가야 하는구나, 그렇게 되면 아마 자신이 처녀시절에 했던 것처럼 양떼를 몰며 살아가야 할 것이고, 자신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던 남편이 새로운 부인을 맞이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지금까지 도덕적 용기와 진실로 버티어 온 것처럼 이번에도 자신의 영혼을 간직하며 참고 견디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군주의 의도대로 로마교황이 군주에게 보내는 가짜 편지를 배달하게 하여 신하들이 모여 있는 앞에서 그리셀다와 이혼하고 다른 아내를 맞이해도 된다는 교황의 승인서를 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 교황의 이혼 승낙서가 도착했으니 이제 당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다른 아내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소. 나의 조상은 이 지역의 위대한 군주였으나 그대의 조상은 줄곧 가난한 농부였으니 나와 그대의 결혼은 극히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고, 더 이상 아내로 데리고 살수가 없게 되었소.
그러니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지참금을 챙겨 친정으로 되돌아가시오. 나는 나에게 어울리고 내 백성들도 좋아하는 다른 여성을 구하여 아내로 맞이할 것이오”
부인은 이 같은 심한 말을 듣고도 여느 여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로 고통과 눈물을 참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군주님. 나는 그렇게 분별이 없지는 않습니다. 나는 항상 신분이 낮은 내가 군주님의 위엄과 가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군주님과 결혼해서 얻은 지위는 내 자신이 원래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라 군주님과 하나님의 은총과 얻어진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이를 회수하시겠다면 이제 기쁜 마음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여기 당신께서 결혼할 때 준 반지가 있습니다. 모든 겸손을 다하여 군주님께 돌려드립니다”
“군주님께서는 제가 시집올 때 가져온 지참금을 가지고 돌아가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나에게 계산해 줄 회계사도, 돈지갑도, 그리고 짐을 싣고 갈 나귀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전해드립니다.
모든 것은 군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 몸이 비록 군주님과 함께 자식을 낳았지만 알몸으로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알몸으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왔다가 되가져 갈 수 없는 순결성에 대한 대가로 군주님이 미덕을 보인다면 알몸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결혼식 때 입은 속 옷 한 벌만 걸치고 가겠습니다. 속옷 한 벌이면 떠나는데 충분합니다”
이 말을 들은 군주는 마음 속으로 울고 있었으며, 눈으로는 기꺼이 그렇게 해도 좋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속치마 하나는 걸치고 가시오”
“그녀가 그렇게 하도록 준비하거라”
모여 있던 신하들은 지난 13년 동안이나 군주의 부인이셨으니 그렇게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보내는 것은 안되며, 제발 입을 옷만큼은 주어야 한다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군주를 설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신하들은 부인이 나체나 다름없는 속치마 차림으로 말도 타지 않고 맨발에다 맨머리를 한 채 슬픔에 차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모습으로 친정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난한 농부 잔누쿨라는 군주가 진심에서 자신의 딸을 아내로 맞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고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예상하며 딸이 시집가는 날 벗어놓은 옷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그동안 간직했던 옷을 꺼내 딸에게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 옷을 입고 옛날 자신이 했던 방식대로 아버지 일을 돌보며 그녀의 적, 운명이 가하는 매서운 시련을 강한 의지로 견디어냈습니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