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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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치마 차림으로 쫓겨난 군주 부인, 그리셀다 (7)
  • 충남일보
  • 승인 2007.03.2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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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좌)인내심 많은 그리셀다. 프랭크 코퍼((1877-1958) 작품. (사진 우)2005년도 영국에서 상연된 오페라 탑걸의 한 장면. 탑걸은 인내심많은 그리셀타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얼마 후 구알티에리 군주는 볼로냐의 파나고 백작 가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는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그리셀다에게 사람을 보내 와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리셀다가 궁으로 들어오자 군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맞이할 아내는 며칠 내로 도착할 것이오. 새사람이니 커다란 환대를 해주어야 하오.
그러나 그런 축하에 필요한 방을 꾸민다든가, 장식을 준비하는데 익숙한 하녀들이 우리 집에는 없다는 것을 그대도 알 것이오. 그래서 다른 부인들보다 그 일을 잘 알고 있으니 준비를 해주기 바라오.
잠시 여주인이 된 기분으로 그대가 판단해서 적합하다고 여기는 부인들을 초대하여 새 사람을 맞도록 준비해줘야겠소. 그리고 결혼식이 끝나거든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시오”
그리셀다는 자기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군주에게 품고 있던 애정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군주의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인자하신 군주님. 나를 찾아준 이상 군주님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여 얼마전 속치마 바람으로 쫓겨난 집에 남루한 옷차림으로 다시 들어와 방을 쓸고, 깨끗이 닦고, 거실의 의자를 문지르고, 주방의 모든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마치 이 집에서 제일 일 많이 하는 비참한 하녀처럼 모든 일이 질서 있게 정리될 때까지 빈틈없이 일을 하였습니다.
물건을 닦고 정리한 다음에 구알티에리 군주의 이름으로 각 지방의 귀부인들에게 초대장을 띄우고 결혼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식 날이 되었으나 그녀는 여전히 초라한 차림이었지만 귀족부인다운 예절과 표정으로 여자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군주가 볼로냐의 파나고 백작 가문으로 출가한 친척집에 아이들을 소중히 길러달라고 부탁한 두 자녀 가운데 큰딸은 이때 열두 살로 세상에서 보기 드물 만큼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해 있었고, 아들은 여섯 혹은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그는 심부름꾼을 친척집에 보내 딸과 아들을 살루초로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살루초로 올 때에는 훌륭한 수행원을 대동하고 딸에게는 자신의 신상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말도록 당부까지 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는 구알티에리 군주의 신부가 될 거라고 알렸습니다. 군주는 그 심부름꾼으로 다름아닌 그리셀다를 보냈습니다.
그리셀다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두 남매를 데리고 결혼잔치 시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궁 앞에는 신하들과 사람들이 나와서 구알티에리 군주의 새로운 신부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녀는 군주와 귀부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그리셀다가 이미 정리해 놓은 홀로 들어섰습니다. 그리셀다는 시골에서 입던 차림으로 나아가 친근하게 말했습니다.
“군주님의 새 배우자를 환영합니다”
이 날 결혼식에 참여한 귀부인들은 그리셀다를 방에 남겨 놓던지 아니면 남루한 차림으로 손님 앞에 나가는 것보다 예전에 입던 옷을 그녀에게 입도록 해달라고 군주에게 간곡히 요청했습니다만 군주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리셀다는 식탁으로 나가 신부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새 신부에게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군주가 부인을 바꾸었다고 소곤거렸지만 감히 입 밖으로 말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리셀다만 신부와 그녀의 어린 동생을 칭찬하였습니다.
군주는 그리셀다의 인내심과 관련하여 자신이 바라는 대로 어떤 사태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얼굴색조차 변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녀의 강한 영혼에 만족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리셀다가 총명하다는 것을 알았고 냉정한 표정 뒤에 감추고 있던 고통스런 마음에서 그녀를 해방시켜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불러 동료와 여러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리셀다, 그대는 새 신부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군주님”하며 그녀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군주님에게 잘 어울리는 배필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만 저 아름다움뿐 아니라 총명함마저 겸비한다면 군주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제가 소원을 한가지 말씀드린다면 군주께서는 예전의 부인에게 했던 그런 잘못된 언사를 새 신부에게는 하지 않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의 부인은 어릴 때부터 인내심을 갖고 자랐지만, 저 분은 나이도 매우 어리고 우아하게 교육받고 자라난 분이기 때문입니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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