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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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쉬타르 여신의 지하여행(1)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4.04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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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를 점령한 악카드인들은 인안나 여신을 이쉬타르 여신으로 받아들여 숭배했다. 이 여신은 지금의 터키와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퍼져 아스타르테로 불리기도 했다.
이쉬타르 여신은 사랑의 여신, 사랑과 출산, 풍요의 여신이다. 그녀가 갖고 있는 상징성은 지하세계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대지에 풍요로움을 가져오는 화신으로 묘사되었고,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는 사랑의 여신답게 길가메쉬의 입을 통해 그녀의 사랑행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장에서는 이쉬타르의 지하세계 여행,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이쉬타르가 길가메쉬를 유혹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랑의 성적인 속성뿐만 아니라 자연계에 가져오는 생명과 풍요의 성스러운 속성까지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먼저 그녀의 지하세계 여행은 곧 지구상의 생물이 죽어 가는 과정과 또 소생하는 측면을 상징한다.
이쉬타르 여신이 남편(아들로도 나온다)인 탐무즈를 구하기 위해 저승세계로 내려가자 지상은 혼돈이 엄습했고, 황폐해져갔으며, 대지는 생명력을 잃었다.
이쉬타르는 저승의 문을 두드리며 자신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저승문을 부숴 버리고 잠들어있는 죽은 자들을 풀어줄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녀는 저승의 일곱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자신의 옷과 장신구를 빼앗기고 벌거벗기게 되었다. 그리고 재판에서 사형을 받아 죽게 되었다.
그녀의 시종 팝수칼은 이쉬타르가 저승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높은 신들에게 알렸다.
그의 호소를 들은 에아(지하수의 신)는 내시 아수슈나미르를 만들고 생명의 물을 담은 자루를 주어 에레쉬키갈에게 보냈다.
그의 주문이 효력을 발휘하여 에레쉬키갈은 마지못해 자신의 시종 남타르(질병을 주는 운명의 신)를 시켜 에아가 보낸 생명수를 이쉬타르에게 뿌려주라고 명령했고, 이로써 이쉬타르는 죽음에서 해방되어 현세로 다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일곱 관문을 지나면서 빼앗겼던 옷들을 다시 찾아 입었다.
그러나 그녀는 에레쉬키갈에게 신세진 빚이 남아있었고 그 빚은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이었다.
에레쉬키갈은 남타르에게 만일 이쉬타르가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다시 저승세계로 데려와야 한다는 말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결국 탐무즈를 저승으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쉬타르의 상징성은 그녀가 저승으로 가자 대지는 생명력을 잃고 식물들이 말라죽었고, 이승으로 되돌아오자 대지의 힘이 되살아났다.
풍요와 번식, 다산의 여신 이와 같은 내용은 ‘이쉬타르 여신의 저승여행(The Descent of Ishtar)’에 잘 나타난다. 여기에 인용된 것은 E. 스피세르(Spieser)의 해석을 따온 것이다.

달의 딸 이쉬타르는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땅,
에레쉬키갈의 영토로 가기로 했네.
거긴 이르칼라(에레쉬키갈의 다른 이름)가 사는 어두운 집이고,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집이며,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고, 출입구에 불빛 없는 집일세.
그곳은 먼지로 식사하고 진흙으로 식량을 만들며,
그곳은 불빛을 찾아볼 수 없고 어둠만 있고,
새와 같은 옷을 걸치고, 날개로 옷을 입으며,
문밖에는 먼지가 소용돌이치는 곳이네.

이쉬타르가 돌아올 수 없는 땅의 대문에 도착했을 때
수문장에게 말했네.
“오 지옥의 수문장이여, 너의 문을 열어라.
내가 지나갈 수 있도록 그대의 문을 열어라!
문을 잠가 들어갈 수 없다면
나는 이 문을 부숴 버릴 것이다.
빗장을 깨뜨릴 것이다.
나는 문설주를 부숴 버릴 것이다.
나는 문들을 이동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는 자들을 집어삼키도록
죽은 자를 깨울 것이다.
그리되면 죽은 자는 산 자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수문장이 입을 열고 말했네.
“여신이여, 기다리세요. 부수지 마세요!
여왕 에레쉬키갈에게 그대의 이름을 알리겠나이다”
“보십시오. 여왕의 자매 이쉬타르가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나이다… 위대한 권한을 가진 여신입니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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