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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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쉬타르 여신의 사랑(3)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4.12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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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영국의 라파엘 전파의 화가인 단데 로제티가 그린 시리아의 아스타르테. 신화속의 여신 이쉬타르를 현대적인 육감으로 잘 그려냈다.
엔키두가 어떻게 대처할까… 친구여, 나는 보았네…
그리고, 나의 힘으로… 내가 찢어 죽일 것이네.
나와 자네, 우리 힘을 모으세. 나는 황소를 붙잡을 것이네, 손으로 잡을 것이네.
앞에서… 목덜미와 뿔 사이에 자네의 칼을 꽂게나”
엔키두가 살그머니 접근하여 하늘 황소를 잡았네. 두꺼운 꼬리를 잡고, 양손으로 집어들었네.
그리고 길가메쉬가 전문 도살자와도 같이 대담하고 정확하게 하늘황소에게 접근했네.
길가메쉬는 목덜미와 뿔 사이에… 칼을 꽂았네. 하늘의 황소를 죽인 뒤
그들은 심장을 꺼내, 태양신에게 바쳤네, 겸손하게 드렸네.
그들은 형제들과 함께 앉았네.

이쉬타르는 하늘 높은 우루크의 성벽으로 올라가, 슬피 우는 모습으로, 저주를 퍼부었네.
“나를 비방하고 하늘의 황소를 죽인 길가메쉬에 저주가 있으라!”

엔키두가 이쉬타르의 비난소리를 듣고, 황소의 뒷다리를 찢어 그녀 얼굴에 던졌네.
“잡히기만 한다면 너도 그리할 것이다! 이 내장으로 너의 두 손을 감싸줄 것이다!”
길가메쉬는 모든 예술인과 장인을 불러모았네.
이쉬타르는 춤추거나 노래하는 여자, ‘신전에서 몸을 파는 여자’를 불러모아 하늘 황소의 뒷다리를 애도하게 했네.
그들은 커다란 뿔을 보고 감탄했네. 그들은 두 개의 두꺼운 기둥(뿔)을 청금석으로 입혔네.
뿔 하나에 30미나(1 미나는 약 500g) 씩 들어갔네. 그는 뿔을 가져와 성벽 위에 걸어 놓았네.
그들은 유프라테스강에서 손을 씻고, 손에 손잡고 앞으로 나갔네, 우루크의 도시를 행진했네.
우루크의 남자들이 그들을 응시했네.
길가메쉬는 왕궁 시종에게 말했네.
“가장 용감한 자 누구냐? 가장 용감한 남자 누구냐?
길가메쉬가 가장 용감한 남자다! 우리가 던진 황소 뒷다리에 맞은 그녀는 화가 났네.
이쉬타르, 그녀를 기쁘게 해줄 사람이 없네, 거리에도…”
‘길가메쉬 서사시’ 6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바빌로니아 소녀들은 이쉬타르의 신전에서 낯선 남자에게 처녀성을 맡겨야 하는 신에 대한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그 대가로 주는 돈을 신전에 바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의 처녀 - 여름의 결혼 - 겨울의 쪼그랑 할멈, 그리고 숫총각 - 결혼 - 쪼그랑 할아범, 이것은 남녀가 살아가는 인생의 과정이다. 풋풋함 - 가득함 - 노쇠함, 이것은 자연의 사이클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사막에도 새싹이 돋아나는 탄생의 환희는 동식물의 번식과 대지의 결실로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이 태어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는 사이클과 유사하다.
그리고 반복되는 생명의 환희와 죽음의 고통은 곧 새로운 탄생으로 덮어진다.
이 사이클에 신들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면 그 과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길가메쉬의 서사시에서는 성적 에너지의 상징인 이쉬타르 여신의 사랑 편력이 잘 드러내준다.
“이리 오세요, 길가메쉬. 나의 남편이 되어주세요. 나에게 당신의 달콤함을 맛보게 해주세요.
당신은 내 남편이 되고, 나는 당신의 부인이 될 거예요…
래피즈 래줄리 보석과 황금 마차를 준비할 거예요. 삼나무 향기 그윽한 나의 집으로 오세요”라고 속삭이는 사랑의 메타포는 길가메쉬에 대한 달콤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유혹을 극복하려고 그녀의 사랑경력을 낱낱이 열거하며 시장바닥이나 무너진 성벽에 남아있는 초라한 데서 남편 감을 찾으라는 조롱을 보냈는데, 아마도 그것은 길가메쉬 자신이 옛날 애인들이 갔던 비참한 길을 밟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탐무즈를 저승에 보내 일년 내내 애도하게 만들고, 양치기 새의 날개를 부러뜨리고, 용감한 말을 계속 뛰게 만들고, 정원사를 난쟁이로 만들게 했다는 길가메쉬의 조롱은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 장면에서 에로스의 여신은 항상 봄의 풋풋함, 봄처녀이지만 여신과 잠자리를 같이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노쇠함으로 생명력을 잃어간다.
여신의 사랑을 얻은 남성들은 마치 봄날에 일곱시간을 뛰고 또 일곱시간을 뛰는 말처럼 사랑의 열기를 나누다가도 겨울로 접어들면 시든 꽃처럼 활력을 상실하게되고, 여신으로부터 날개를 꺾여 숲 속에 숨어서 “날개로 훨훨 날던 아 옛날이여”를 반추하며 탄식하거나, 난쟁이로 변하는 수모와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을 길가메쉬의 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길가메쉬는 사랑의 묘약을 마신 후에 다가오는 씁쓸함을 미리 알고 여신의 사랑을 거부했지만, 여신은 심술로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하늘의 황소를 데려와 코방귀로 처음에는 우루크의 젊은이들 100명을, 다음에는 200명을 죽이고, 그것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아 다음에는 길가메쉬의 친구 엔키두를 날려보내려는 심술을 통해서 여신의 권위를 세우려 했다.
사랑의 여신에게는 이만한 자격쯤은 마땅히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녀가 존재하지 않을 때 자연과 사람과 생물이 사랑을 나누지 않고 종의 번식마저 거부해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세상은 죽음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이쉬타르 여신의 자격과 권한, 존재 의미를 인식한다면 길가메쉬에 대한 그녀의 심술과 권한을 좀더 심하게 행사하였었더라도 세상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오거나 길가메쉬의 지위까지 흔들리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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