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시론] 설날의 어원과 유래
[충일시론] 설날의 어원과 유래
  • 최춘식 국장
  • 승인 2009.01.2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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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란 ‘새해의 첫마디’란 뜻이고, 그 중에서도 새해 첫날이란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개 세가지 설이 있다.
우선 설날은 ‘낯설다’라는 말의 어원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설날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서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설날은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아침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설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 또는 ‘조심하다’ ‘가만이 있으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을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세(歲時), 연두(年頭), 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붙힌다.
설날은 우리민족의 최대명절이다.
본래 설날은 조상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먼저 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하는 아주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생활과 산업화 사회라는 굴레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곧 도시생활과 산업사회에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수 있는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즐겨가는 교체기라고도 할수 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하여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 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있는 날이라고 말할수 있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새옷을 즐겨 입는다. 여기서 우리는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한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볼 때 설날이 가지는 의미 즉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명절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민족의 최대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순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위해서는 우선 역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나라가 나름대로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 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 삼국지(三國)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문무왕때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민족은 단순한 중국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수 있다.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수있는 ‘가위’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중국전래의 태양태음력 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고유의 역법제정에 관한 기록은 찾을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음태양력을 받아들인 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아침에 서로 하례하여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편에는 백제고이왕 5년(238)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2년(287)정월에는 시조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헤공왕(765)때에 오묘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헤공왕의 조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5일에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대보름을 삼짇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로 하였으나 이미 이 시대에도 오늘날과 같이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알수있다.

【논산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