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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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하는 수잔나와 스티븐슨의 시(1)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4.19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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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루벤스(1577-1640)가 펜과 잉크로 1607-11년에 그린 목욕하는 수잔나. 장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 담겨 있다.
목욕하는 수잔나를 엿본 남자들의 콩당거리는 심장, 이 불쾌함을 당한 여인의 심정을 시로 표현한다면 어떻까?
미국의 시인 스티븐스는 ‘건반 앞의 피터 퀸스(Peter Quince at the Clavier)’라는 시에서 장로들이 수잔나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심장 박동이 거칠어지고 욕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마치 현을 뜯어내는 피치카토와 같이 음악이 흐르는 듯한 섬세한 방식으로 묘사하였다.
이 시는 1915년에 발표된 것으로 보이며, 다음의 인용문은 1923년 9월 하모니움(Harmonium)에 들어있는 것으로 4장으로 구성된 시 전체가 마치 심포니 혹은 4중주 음악을 듣는 것과도 같이 리듬감 있게 읽혀진다.

〔1부〕
이 건반 위의 내 손가락이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내 영혼의 소리도 동일한 음악을 만드네.
음악은 느낌, 그건 음향이 아니네.
그리고 음악은 여기 이 방에서 그대를 기다리며, 내가 느끼는 것.
그대의 그림자가 진 하늘색 실크 옷을 그리는 것은 음악.
그것은 수잔나가 장로들을 깨우는 기분.

맑고 깨끗하고 따스한 초록의 저녁에 정원에서 그녀가 목욕하는 동안, 붉은 눈의 장로들이 지켜보고, 현을 뜯어내는 심장의 저음을 느끼며 나약한 박동이 찬미의 소리를 탄주하네.

〔2부〕
맑고 따스한 초록 물에 수잔나가 누워있네.
그녀는 봄의 감촉을 느끼며 숨겨진 생각들을 쌓기 시작했네.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을 그리워하네.
강둑에 선 그 여인은 쏟아버린 감정에 침착해졌네. 나뭇잎 사이로 지난날의 애정을 느꼈네.
아직도 떨리는 채로 풀밭을 거닐었네. 머뭇거리는 바람은 수줍은 걸음으로 손으로 짠 목도리를 가져오는 하녀와도 같네.
손등의 입김이 밤을 조용히 하네.
여인이 돌아서자 심벌즈 요란히 부딪치고 호른이 울고 있네.

피터 퀸스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시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면 제1부는 저음으로부터 시작하며 손끝으로 현을 뜯는 피치카토로 전환된다.
제2부는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다가 곧 평온함이 깨지면서 심벌즈 소리같이 요란한 음악이 된다.
수잔나가 연인과 함께 있었다면 그 장면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합창곡으로 표현했을지도 모르지만 음탕한 감정과 욕정에 불타 변덕스럽게 뛰는 심장박동을 마치 수준 낮은 음악으로 비유한 것이다.
제2부에서 목욕을 끝내고 하녀의 발걸음처럼 조심스럽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받으며 강둑 위를 걷는 수잔나의 평온한 장면이 아름다운 선율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녀의 평온함도 심벌즈를 들이대는 소리처럼 장로들의 접근으로 이내 깨지고 곧 혼란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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