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 북한 핵과 뒷돈대기 바쁜 한국정부
[수요논단] 북한 핵과 뒷돈대기 바쁜 한국정부
  • 충남일보
  • 승인 2007.04.2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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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찬 의원 【 국민중심당 정책위 의장 】
지난 22일 정부는 평양에서 경협추진위를 열고 북한에 쌀과 경공업자재 지원을 합의했다. 북한의 핵 폐기 속도를 보아가며 지불한다는 국제적 합의와는 달리 한국 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앞선 지원 약속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는 시간을 돌려서 14년 전의 사건을 기억하면 국민들도 어느 정도 수긍할 것이다.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자 전 세계는 격분했다. 그리고 1년 뒤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그의 사망 이후에 김정일로부터 제네바 핵 합의를 이끌어냈다. 1994년 10월 21일의 일이다. 이 합의는 핵 활동 동결과 관련 시설 해체, 대북 중유 제공, 경수로 건설 제공 등이었다.
이 합의에 의해서 한국정부는 약 1조 4천억 원의 경수로 건설비용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작년 10월 전격적인 핵실험을 통해서 비핵화 선언을 휴지조작으로 만들었다. 결과론적인 평가이지만 제네바 합의는 유감스럽게도 북한의 핵 동결이 아니라 또 다른 핵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제공, 오늘날 핵실험까지 허용하는 전략적 실패를 초래했다.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 역시 북한이 속인다면 그것으로 끝장내주겠다고 했지만 북한은 국제사회를 속이고서도 클린턴의 호언대로 끝장나지 않았다. 그 후 13년의 시간이 흘러 지난 2월 13일 미국은 베이징에서 6자회담을 성사시키고 북한의 핵무기 폐기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는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보상이 뒤따랐다. 한국이 부담해야 할 돈은 북한 핵이 폐기될 때까지 매년 2조원씩 약 20조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2월 13일의 베이징 6자 합의에 의하면 북한이 60일 이내에 합의사항을 이행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부는 북한이 2·13 합의를 이행하는지 지켜보지도 않고, 남측의 이행사항인 중유 5만 톤 제공을 황급히 서두르다 유조선 임대 계약금과 중유 보관료로 36억 원의 나랏돈만 날려버렸다. 그리고 다시 엊그제 쌀 45만 톤과 공업자재 등 2150억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정부는 북측에 2·13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쌀 지원이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지만 합의문 어디에도 이런 구절은 없다. 베이징 6자회담에서 타결된 2·13합의 이행 여부도 지켜보지 않은 채 2월 말 장관급회담 때부터 쌀 지원을 기정사실화한 것이 문제이다. 북한 핵을 폐기로 이끈 합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핵을 개발한 북한에 대해 보상을 해주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커다란 합의를 깰 때마다 더 큰 보상을 준다면, 북한과의 합의는 북한 스스로 깰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조약 탈퇴 이후 북한에 지원된 경수로 건설자금, 그리고 2006년 핵실험으로 촉발된 제2차 한반도 위기 타개책으로 지원되는 약 20조원의 중유 제공이 북한 핵에 인질이 된 대한민국의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하지 않겠다던 원칙을 포기한다면 북핵 문제는 매우 어려워진다. 북한이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계기로 막대한 외부자금을 지원받아 이른바 박정희식 경제개발을 통해 개혁과 개방을 추진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대외 협상력을 높여주는 핵을 북한이 포기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체제붕괴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13년 전의 플루토늄을 통해서 조성한 한반도 위기, 지하 핵실험을 통해서 제2 한반도 위기를 일으킨 지금의 북한은 어쩌면 순진한 클린턴, 부시정부, 그리고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합작으로 만든 정책실패의 대가인 것이다.
필자는 정부에 대북정책의 원칙을 지켜줄 것을 주문한다. 대선정국, 정권이양기의 대북정책에는 더욱 확실한 원칙이 필요하다. 정부 핵심인사가 북한을 방북하고, 정상회담을 통해서 국내정치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라면 앞으로도 북한으로 인해 촉발되는 한반도 위기는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핵 없는 북한을 통해서, 진정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줄 것을 촉구한다. 그것만이 국민의 부담과 불안감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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