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44
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44
다윗왕과 밧세바(3)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4.25 1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솔리메나 프란체스코(1657-1747)가 1725년에 그린 ‘목욕하는 밧세바’. 목욕하는 장면을 건너편의 다윗 왕이 바라보고 있다. 솔리메나는 나폴리에서 활동한 바로크 스타일의 화가로 사보이의 후원으로 남작이 되었고,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후원도 받았다. 그는 18세기 베네치아 화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헷 사람 우리아는 다윗 왕의 37인 용사 가운데 마지막에 이름이 오른 충성스런 용사였다.
헷 족은 히타이트(hittite)를 가리킨다. 이들은 기원전 1296년에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카데시 전투에서 중동의 패권을 다투던 용감한 민족이었다.
그 이후로 그들은 가나안과 터키 지방으로 흩어지고, 우리아는 이방인이었지만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귀화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아의 충성심이 왕의 계획을 번번이 무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왜 다윗 왕이 군인 우리아의 잠자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가?
그가 어디에서 잤든 그것이 국가지도자의 관심 대상은 아니다. 그런데 왕은 그를 전쟁터에서 소환하여 식물(선물)도 내려보내고 술도 먹이고 얼큰하게 취하게 만들어 밧세바와 동침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왕의 의도와는 달리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고 성문에서 수비병들과 잠을 함께 하는 그 맹목적 충성심 때문에 결국 자신의 죽음을 불러오게 되었다.
전쟁에 나간 병사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잠자리를 하는 것은 당시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이를 지시하는 왕의 명령 또한 상식 밖의 것이었다.
반면 국왕의 입장에서는 우리아가 맹목적 신념에 사로잡혀 국왕의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를 전장에 다시 내보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결국 밧세바는 사건을 다윗 왕에게 의존함으로써 새로운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윗 왕과이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기를 7일만에 잃게되었다.
그녀가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낳은 아이를 잃게됨으로써 첫 남편 우리아의 땅에 떨어진 체면을 세워주려는 예정된 시나리오는 아니었을까?
넷째, 한 나라를 책임진 지도자의 강압적인 사랑, 강압적인 인사조치에 대적할 사람이 있을까? 또 보호해야 할 시민들을 억압한다면 왕의 잘못을 설교했던 나단과 같은 정신적 지도자가 필요한 게 아닐까?
1887년 영국의 맨델 크레이턴 주교는 액튼 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권력은 부패한다. 그리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경고한 것처럼 위대한 사람의 이면에는 항상 어떤 것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한 면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 지도자는 오히려 밧세바와 같이 남편을 전쟁터에, 산업현장에 내보낸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의무가 아니었을까?
리더의 역할에는 법이 보장하는 대로 신체의 자유도 보장해야 하고, 반면에 자신 스스로 도덕적인 금욕의 의무도 지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위를 이용하여 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를 캐내서 대통령 혹은 왕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도 안 된다.
밧세바의 전 남편 우리아는 밧세바의 임신에 따른 희생양이며, 다윗 왕은 그 가해자다.
그러나 우리아의 체면이 떨어진 것과 더불어 다윗 왕의 체면도 말이 아니었다. 그러면 왕의 체면(face)을 회복하게 되었을까?
체면을 회복하는 길은 권력자가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고 공개 사과하여 바로잡는 것에 있다. 그러나 다윗 왕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때 국가 통치자에게 ‘어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가져다 손님을 접대를 한다’는 얘기를 빗대어 국왕에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You are the man)”라고 말하는 정신적 지도자 나단이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다윗 왕은 여호와의 진노로 130만 명의 인구 가운데 7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임을 당하는 국가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단을 쌓고 제를 올려 재앙을 그치게 한 뒤에야 비로소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의 죄 또한 눈보다 더 하얗게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윗 왕이 죽은 지 약 900년 후에 그의 고향 예루살렘을 그 후손인 요셉과 마리아가 지나가다 예수를 잉태하며 그들에게 은총과 자비를 주었다.
지금까지 붉은 눈의 장로들 그리고 다윗 왕이 보여준 ‘보는 것이 믿고 느끼는 것이고, 그것이 행동의 기준’이라는 죄의 역설을 보았다.
필자는 어느 학자의 말을 빌려 “보는 것은 통제하는 것이다(to see is to control)”라는 말을 강조하고자 한다.
눈에 들어온 모든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야 인간이 가진 감성이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고 느낀 뒤에 행동하는 것은 이성을 통해 스스로 절제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