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53
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53
샬럿의 아가씨와 라파엘 전파의 미학(7)
  • 충남일보
  • 승인 2007.05.08 1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테 로제티가 그린 백합아가씨(1868년 작). 그의 작품은 다른 라파멜 전파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한 주제 샬럿의 아가씨 화풍과 유사하게 백합아가씨란 제목을 달았다.
(1)
강물이 흐르는 쪽엔 긴 보리밭과 호밀 밭이 펼쳐지며
세상을 뒤덮고 하늘과 닳아있네.
긴 평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수많은 탑이 있는 카멜럿 성으로 뻗어있네.
사람들이 이리 저리로 오가며 그 아래 백합이 휘날리는 섬
샬럿의 섬을 볼 수 있네.

버드나무가 하얘지고 사시나무가 떨며 해질녁의 산들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섬을 지나 카멜럿 성으로 영원히 흘러가는 강물에 물결을 만드네.
네 개의 회색 성벽과 네 개의 회색탑은 정원의 꽃들을 감시하고,
침묵하고 있는 섬은 샬럿의 아가씨를 둘러쌓았네.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섬 끝에 말이 무거운 배를 끌고 느리게 걸어가네.
작은 보트가 경쾌하게 비단같이 부드럽게 카멜럿 성으로 미끄러져 가네.
누가 그녀의 흔드는 손을 볼 것인가? 누가 서있는 것을 볼 것인가?
샬럿의 아가씨는 모든 대지를 알고 있을까?

수염난 보리밭엔 농부들만 열심히 수확하고 카멜럿 성으로 흘러가는 강에서
유쾌하게 메아리치는 소리를 들었네. 달이 뜨고 수염 기른 농부가 보릿단을 묶어
바람부는 산허리에 쌓아두며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네.
그 이름은 아름다운 샬럿의 아가씨

(2)
그 곳에서 그녀는 밤에도 낮에도 화사한 색조로 마법의 직물을 짜고 있네.
그녀는 카멜럿 성을 내려다본다면 저주가 있을 거란
속삭임을 들었네.
어떤 저주인지 모르면서 그녀는 부지런히도 직물을 짜고 있네.
누구도 돌보지 않는 샬럿의 아가씨.

일년 내내 그녀 앞에 걸려있는 거울 속의 움직임이 또렷해지고
세상의 그림자가 나타났네.
그 곳에서 그녀는 카멜럿 성으로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길을 보았네.
그 곳은 강물이 소용돌이치고 그리고 미천한 농부들이 살고
그리고 붉은 외투를 입은 시장소녀가 샬럿 곁으로 걸어와서 지나가는 것을 보았네.

때론 명랑한 계집아이 무리가, 말을 옆으로 탄 대수도원장이,
때론, 머리가 곱슬머리의 젊은 목사가, 그리고 심홍색을 띤 긴 머리의 견습기사가
카멜럿 성으로 오가네.
때론 푸른 거울을 통해서 말을 탄 기사들이 두 명 씩 짝을 이뤄 오네.
그러나 고귀하고 진정한 기사는 보지 못한 샬럿의 아가씨.

거울 속에 비친 마법의 세계를 자수에 수놓는 것이 기쁨이라네.
침묵의 밤이 지날 때마다 깃털과 광휘, 음악으로 장식한
장례행렬이 카멜럿 성으로 가고 있네.
그리고 달이 머리에 떠 있을 때 젊은 두 연인이 막 결혼했네.
나는 이제 그림자에 실증이 났어요 라고 말하는 샬럿의 아가씨.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