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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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의 아가씨와 라파엘 전파의 미학(7)
  • 충남일보
  • 승인 2007.05.0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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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의 아가씨. 라파엘 전파 화풍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88년)의 작품. 배를 묶은 사슬을 끊고 자신의 이름을 새긴 후에 카멜럿 성으로 향해 가는 장면. 1세기 이상 사랑을 받아온 이 작품의 샬럿의 아가씨는 그야말로 에로틱한 몽상에 빠져 있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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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동풍이 질주하여 어스레한 노란 숲이 쇠잔해지고,
강 우안의 넓은 개울이 불평하네.
카멜럿 성 너머 낮은 하늘에 폭우가 내리네.
그녀는 성을 나와 버드나무 아래 떠 있는 보트를 찾았네.
그리고 뱃머리에 샬럿의 아가씨라 새겼네.

꿈결의 예언자인 냥 희미한 강을 지나 넓은 강으로 내려가며
유리 같은 창백한 자신의 얼굴, 모든 불행, 카멜럿 성을 보네.
그리고 하루해가 닫힐 때 사슬을 끊고 드러누웠네.
넓은 강물에 멀리 밀려가는 그녀는 샬럿의 아가씨.

축 늘어져 이리저리 떠밀려 가며 눈같이 하얀 옷을 입고 누워
나뭇잎이 그녀를 덮어주며 밤의 소음을 지나
카멜럿 성으로 밀려가네.
버드나무 언덕과 숲을 지날 때 보트의 앞머리가 흔들리며
그녀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를 사람들은 들을 수 있네.

때론 큰 소리로, 때론 작은 소리로
기쁨의 노래, 애도의 노래, 성스러운 노래를 들었네.
생명이 서서히 차가워질 때까지 그리고 카멜럿 성을 바라보며
그녀의 눈이 어두워졌네. 마침내 조류를 타고 강변의 첫 집에 도착했네.
죽어 가면서 그녀의 노래를 부르는 샬럿의 아가씨.

19세기 빅토리아조의 여성은 란슬럿과 같은 강한 남성의 어깨에 매달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따라서 샬럿의 아가씨에서 제시된 것처럼 어떤 유혹과 모욕에도 자신을 방어하며 얌전빼는 요조숙녀, 성적으로도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모습으로 유형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미와 위치는 11세기 고다이버 이래 많은 변화를 겪어 왔듯이, 어느 사회에서건 여성을 가정에 가둬놓고 문에 못질 할 수만은 없었다.
여성은 가정에서 종교적 자선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고 다시 다운타운의 거리로, 그리고 다시 가정으로 여행하는 긴 여정을 겪게 되었다.
테니슨의 시에 등장하는 ‘샬럿의 아가씨’와 같이 성에 갇힌 여인은 19세기 동안 예술가들의 대 주제가 되었다.
때로는 밀레가 그린 ‘마리아나’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올 것 같은 기대를 하며 비탄에 잠긴 서정적인 여인처럼 로맨틱한 사랑의 희생자로 등장하였다.
이런 흐름을 주도한 혁명가들은 영국왕립미술아카데미를 다니던 학생들이었다.
윌리엄 홀먼 헌터(William Holman Hunt, 1827-1910)를 비롯하여 그의 동료들이었던 단테 게브리얼 로제티(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 존 에버렛 밀레(John Everett Millais, 1929-1896) 세 사람이 그 핵심이었다.
1848년 8월 영국왕립미술아카데미의 한 학생으로부터 미술계에 혁명이 일어났다.
윌리엄 홀먼 헌트는 그림을 그리던 정원에서 태양을 한껏 받고 있는 모습의 무화과나무, 나뭇잎, 가지를 그렸다.
그리고 민들레꽃이 피어있는 풀밭, 그 주위를 날고 있는 벌을 황금색과 짙은 갈색으로 세밀하게 그려나갔다. 이것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확한 것이었다.
그는 양식화된 기성화단에 대항하여 같은 학생이었던 밀레, 고미술과 학생인 단테 게브리얼 로제티와 1849년 제1차 라파엘 전파 형제회(Pre-Raphaelites Brotherhood)를 창립하고, F.G 스티븐스(Stevens), 제임스 콜린스(James Collins), 조각가인 토머스 울너(Thomas Woolner), 그리고 단테 로제티의 형이며 비평가인 윌리엄 마이클 로제티를 초대하여 형제회에 가입시켰다.
영국의 왕립미술아카데미의 학생이 중심이 된 이 핵심그룹은 그림에 관해서는 라파엘 이전의 화풍으로 되돌아가 첫째, 풍부한 색조를 강조하며 자연에 충실하는 사실주의 둘째, 초서와 세익스피어, 아서왕과 같은 중세의 작품에 등장하는 영웅과 예술적 가치관을 복원하는 중세주의, 그리고 셋째, 이상적인 여인상을 화풍의 기본적인 이상으로 내세웠고, 이 때문에 라파엘 전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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