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석등 찾아서 ‘동분서주’
사라진 석등 찾아서 ‘동분서주’
연기경찰서, 행복도시내 부안임씨 시조묘 도벌 수사 착수
  • 김덕용 기자
  • 승인 2007.05.10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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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도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내에 부안임씨 전서공파 시조 임난수의 묘에 있는 조선초기에 제작한 석등 1점이 도벌돼 연기경찰서와 관련부서에서 수사에 들어갔다.
도벌일자는 정확하지 않지만 최근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건설로 인해 부안임씨 시조묘를 보전하기 위해 후손들이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이때에 문화재급 석등이 사라져 후손들이 이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라진 석등은 조선초기 제작한 것으로 묘의 주인공이 1407년 돌아가셔서 조성된 묘이므로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전 조성된 석물이다.
임난수는 고려의 충신으로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으로 절의를 지켜 세종대왕께서 사패급복(賜牌給復: 땅을 하사하고 세금을 면제시켜 줌)하고 불천지위(不遷之位: 변함없이 제사지내도록 한 것)로 모시도록 명해 건설청에서 이곳을 세종시로 정하자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석등의 모습은 높이가 약 1.5m 정도이며, 머리가 사각 기와지붕을 본떴으며 감실은 네곳이 사각으로 터져있고 하단에서 받침석, 중심 기둥석, 감실, 지붕으로 구성돼 있다.
시대는 조선초기로 약 600여년 된 것으로 세월을 느껴지게 하는 바위 옷이 약간 입혀져 있다.
한편 지난 1월 정초에는 임난수의 넷째아들 위의공 임흥의 묘가 도벌돼 종인들을 슬프게 하고 이번 또 이러한 사건이 일어났다.
임흥은 아버지 임난수의 절의를 이어 지키자 세종께서 임흥이 죽었을때 예장(禮葬: 왕명으로 장사를 치름)으로 치르도록 명을 내려 묘의 모습이 네모나게 조성된 것으로 임난수의 묘 아래에 조성돼 있어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서 세종시로 이름을 지은 후 세종과 연관된 인물로 알려지면서 이러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신고전화는 연기경찰서 112 번 (연기향토박물관)임영수 016-428-7449, 041-862-7449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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