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농민이 더 이상 ‘씨앗’을 만들 수 없다
[확대경] 농민이 더 이상 ‘씨앗’을 만들 수 없다
  • 한내국 정치부장
  • 승인 2007.06.1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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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때마다 대선이다 총선이다 할때마다 장밋빛 청사진으로 온통 나라안은 무지개가 뜨는 기분이다. 또 해마다 벌어지는 국정조사기간에는 온통 나라 안이 벌집을 쑤시듯 우박과 소나기 소리로 요란하다.
어느 각도에서 보든 이 땅에서 질서가 없는 듯한 이같은 움직임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갈등으로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정치,경제적 논리로 이해하기에는 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기되는 논제들때문에 그나마 발전이라는 개념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이 땅에 여전히 희망이 살아있어 보이는 듯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고 이제 국회비준을 앞두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이번 한미FTA 수석대표를 청문회에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에 모두 퍼주고 만 이번 협상에 대해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뒤늦은 협상문 공개와 정보차단으로 국민적 공감을 잃은 협상으로 또 정부의 말과 실제가 다른 결과때문에 나라안이 온통 격론에 휩싸여 있다.
다가오는 대선과 남북관계, 미국에 이은 FTA확대 등 안팎으로 국가적 사안이 많은 요즘 국민들은 이 땅의 지도력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극심하게 느끼고 있다.
이같은 우울증은 지난 97년 이후 10년동안이다. IMF로 시작된 한국사회의 회오리는 말 그대로 압박과 고통의 혼동과 여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선을 앞둔 지금 정치권은 말 그대로 진흙탕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국회의 기능마저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 삶과 정책에는 관심없는 국회, 대선과 눈앞의 기회에 집착하고 몰두해 있는 국회, 무엇하나 국민의 갈증을 풀어줄 수 없는 정치권의 혼돈을 보면 이래저래 후유증이 도지는 그런 때가 지금이다.
환란으로 시작된 몸살이 이후에는 집안싸움으로 가정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어른이 제대로 대접을 받을 리가 없다. 나아가 그 집안의 종자는 볼 것도 없는 것이다. 서로 싸우는 집안에선 모든 탓이 다 상대에게만 있는 법이다. 옛말에 농민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앗(종자)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종자를 보존하는 권리가 특허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종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것이 아닌 것이 요즘이다.
우리나라는 고유의 생물종마저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농업의 근간인 ‘씨앗’의 경우는 국내 종자시장의 65%가 외국계 다국적기업에게 넘어간 상황이다.
이같은 잘못은 정부 정책이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시장에 방치한 책임도 크다. 또 GMO(유전자조작식품)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의 현실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때문에 오늘날 농민들은 더 이상 ‘씨앗’을 만들 수 없으며 오로지 ‘씨앗’의 소비자로 전락해 잇고 또 지금 생명공학산업은 발달하는데 연구실에는 분류학자가 사라지고 생명공학자만 넘쳐 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것은 보전이라는 그 자체의 의미와 함께 경제적 가치라는 부가적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이미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 등으로 지구상의 생물종은 차츰 멸종을 맞이하고 있으며,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 농업 역시 뿌리부터 붕괴할 수 있다. 우리 농민들과 지자체들은 FTA등에 대비하기 위해 오직 국제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며 오직 생산성만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브랜드고급화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내줄 것은 다 내준 정부는 정작 중요한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아이가 울어도 살펴보지 않는 부모라면 이는 부모가 아니다.
이제라도 시급히 종자산업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우리 고유의 토종종자를 보전해 농업의 가치를 지키는 한편 농민을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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