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나를 위한 ‘이기적인 생명존중 의식’이 그 무엇보다 필요할 때
[기 고]나를 위한 ‘이기적인 생명존중 의식’이 그 무엇보다 필요할 때
  • 김봉식 서산소방서장
  • 승인 2011.10.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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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추구한 최고의 가치는 ‘생명’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서양의 천부인권사상, 고조선의 홍익인간사상, 신라의 세속오계, 동학의 인내천사상, 최근 발생한 재스민 혁명까지 모든 사상이나 혁명의 바탕에는 생명존중이라는 불변의 가치가 자리 잡고 있음이 이를 방증 한다.
우리민족 또한 예로부터 생명을 존중하여 가을에 과일을 수확 할 때에도 몇 알은 ‘까치밥’이라 하여 남겨두었으며, 잔치를 열 때에도 ‘고시래’라 하여 조금의 음식을 따로 덜어두어 굶주린 동물들의 허기까지도 배려하는 등 우리 주변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생활문화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 속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의 생명존중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값 비싼 자동차가 안전하다고 수 억원을 호가하는 외제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정작 집에는 2만원 남짓한 가격의 소화기 한대도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 주위에서 찾는 것은 여반장(如反掌)이며,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예전과 달라진 국가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알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부산 사격장화재 같은 후진적인 재난으로 전 세계적으로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우리들의 현 주소인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화재로 인해 우리는 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는다. 화재는 언제나 그러하듯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형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접할 때면 소방인 으로서 느끼는 왠지 모를 죄스러움과 참담한 안타까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 안타까움이 너무도 싫어 26년 남짓한 시간동안 화재예방을 있는 힘껏 외치고 있지만 그 외침은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곤 한다.
토영삼굴(兎營三窟)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낱 미물인 토끼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항상 자신의 집주위에 세 개의 굴을 파 놓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어찌하여 어려서부터 생명을 존중하고 아끼는 문화 속에서 자라온 우리는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인재(人災)에 불과한 화재로 인해 반복적으로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잃는 우를 범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생명존중의식이 이기주의적이지 못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이기주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도덕적 관점에서의 ‘심리적 이기주의’와는 분명하게 대별되는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인 ‘본질적 이기주의’를 의미한다.
어려서부터 남을 존중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우리의 뇌리에 생명존중의 의미는 남을 배려하는 ‘이타주의(利他主義)적 생명존중’으로만 깊이 각인되어 정작 본인 스스로를 위한 ‘이기주의(利己主義)적 생명존중’에는 익숙하지 못한 것이다.
산업화의 급격한 진행으로 인해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대형화 되어가고 있고 이에 따라 화재 등 각종 안전사고 또한 대형화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조금은 위험한(?) 환경에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이제는 남을 위한 생명존중을 넘어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생명존중 의식’이 그 무엇보다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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