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 일 칼 럼]북한 가곡의 밤
[충 일 칼 럼]북한 가곡의 밤
  •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
  • 승인 2011.11.06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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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가을이 되면 여기저기서 ‘가을맞이 가곡의 밤’이 열린다.
청명한 가을 저녁, 단아하고 고즈넉한, 그러면서도 가슴 한 구석을 쓸쓸하게 훑고 지나가는 가곡을 듣노라면 누구라도 가슴 속에 시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것이 설익은 시상(詩想)이든, 유명시인의 시 구절이든, 가을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가곡의 밤은 누구에게나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리라!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북한에도 가곡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수 십만명을 굶겨 죽이는 나라, 그러면서도 오로지 ‘수령님’, ‘장군님’ 타령만 하는 나라에 ‘가곡’같은 아름다운 선율은 존재할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어느 민족보다도 춤과 노래에 능한 한민족’이라고 중국인들도 인정했는데 인간의 심연, 그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본연의 음악은 북한에도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소름끼치는 인민군들 사열장면을 떠올리곤, 북한에 가곡이 있어봤자 정치선전용뿐이겠지, 뭐, 하기를 3년.
그러다 올 봄에는 작정을 하고 북한 가곡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국회가 제공했다. 국회에서 북한 얘기만 나오면 여야 국회의원들은 서로가 귀머거리가 되었다. 상대의 주장은 전혀 들어 보지도 않고 친북과 반북이라는 올가미를 서로의 목에 걸어 놓고 끝도 없이 일방 통행적인 자기주장들만 해 대는 통에 기가 질릴 정도다. 내게는 ‘수구꼴통’, ‘반북’이라는 딱지가 확실하게 붙었다. 어느 누구도 내게 그런 표현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발언할 때마다 얼굴에 와 닿던 뜨거운 시선들은 말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집요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맹목적으로 만들었나?
무엇이 우리를 서로에게 이런 낙인을 찍게 만들었나?
우리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북한주민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주민의 인권을 입에 올리면 소위 친북계열의 의원들은 쌍심지를 돋우며 말을 가로 막고 나선다. 햇볕정책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주민에게 따스한 햇살이 가도록 했어야 했는데, 결국은 북한 정권에게 수명연장용 몰핀 주사만 놔준 꼴이 되고 말았다.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접근방식도 바꿔보고, 발상도 전환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던 북한가곡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들었거나 배웠던 북한가곡을 수소문했다. 그리고는 탈북음악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악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주옥같은 가사와 음악성 높은 악보를 구할 수 있었다. 대중적으로 만들어진 영화 속에도 환상적인 창작 음악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탈북자들은 그 음악을 너무도 잘 알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남쪽보다는 북이 우리 민족 고유의 리듬과 가락을 훨씬 많이 활용하고 있었다. 북방민족 특유의 힘차고 구성진 멜로디도 듣기 좋았다. 일단 ‘장군님’이라는 가사가 들어간 노골적인 선전선동 음악을 제외하고, ‘별’로 은유하거나 의인화된 가사도 걸러냈다. 그러고 나니 리듬과 멜로디, 가사가 반짝반짝 더 빛을 발했다.
“백리벌 넓은 들에 가을 가는 길, 소방울이 왈랑절랑 새벽 안개 헤치누나, 왈랑절랑 소를 몰아 돌다리를 건너서니 금파만경이 바다처럼 출렁이네”
‘소방울소리’라는 이 곡은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들판을 부리나케 소를 몰고 지나가는 농부의 바쁘지만 흥이 묻어나는 광경이 눈에 밟히듯 들어왔다. 워낭소리를 ‘왈랑절랑’이라는 의성어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고 익살스러웠다.
또 “안개 낀 모란봉에 둥근 달 솟아올라 잔잔한 대동강에 저녁이 오니 금물결 은물결에 실버들 춤추네 사랑하는 내 고향이여 어디라 먼 길 가도 잊을 수 있으리오”라는 ‘고향의 밤’이나, “초생달 쪼각배는 어디로 가나 두고 온 정든 집을 찾아가겠지, 노를 젓는 배사공도 안 보이는데 하늘나라 머나먼 길 잘도 가누나”같은 ‘쪼각배’는 혹시나 우리 국군포로나 납북자들이 나즈막히 부르며 남몰래 눈물짓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왔다. 이밖에도 가슴 속 절절이 배어 있는 민족의 설움과 한을 칼끝으로 도려내는 듯 처연하게 표현한 곡들도 너무 많았다.
몇 번씩 곡목을 바꾸고 전문가의 의견을 구한 끝에 연주자들을 골라 지난달, 가을의 끝자락에 국회에서 드디어 ‘북한가곡의 밤’을 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주한외교사절들과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뛰어난 음악성과 가슴 속을 파고드는 가사에 열광했다.
이렇게 순수음악은 시공도 이념도 뛰어 넘는 것을.
왜 우리는 북한주민들을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까?
지금 우리 곁에 와 있는 탈북자들도 우리처럼, 아니 우리보다 훨씬 더 가을이면 누군가가 그립고 외롭고 힘들지만, 동시에 깊숙한 사색의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왜 미처 몰랐을까? 인간은 누구나 다 똑같은 심상(心想)을 가졌는데! 통일은 통일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우리 곁에 통일은 한 걸음 성큼 가까워 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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