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 일 논 단]인생과 삶 (Life and life)
[충 일 논 단]인생과 삶 (Life and life)
  • 송낙인 본부장
  • 승인 2012.01.30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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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人生)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 삶은 태어나서 죽기에 이르는 동안 사는 일.
무한과 영원의 시간 속에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삶은 우리에게 참 으로 소중하고 존귀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이 삶을 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하는데, 지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기 쉬우며, 이상도 꿈도 없는 권태롭고 공허한 삶을 무의도식하며 살게 된다.
어떤 인생과 삶의 방식이 가장 값지고 보람 있을까?
모든 사람은 저마다 추구하는 이상과 인생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 지위. 권력을 생애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학문적 업적이나 예술적 창조에 최대의 의미와 가치를 두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선저마다 자기 분수가 있기 마련이다.
욕심쟁이인 ‘빠흠’이라는 주인공에게 어떤 사람이 일망천리(一望千里) 눈앞에 펼쳐진 땅을 가리키며 “여기서 부터 출발하여 저-끝까지 갔다 오는 것을 목표로 하되, 해가 서산에 떨어질 때 까지 이곳에 오면 네가 밟은 땅은 다 너에게 주겠다. 하지만 해가 다 떨어질 때 까지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너는 한치의 땅도 차지하지 못 할 것이다.”고 했다. 탐욕에 눈이 어두운 빠흠은 해가 다 져 가는데도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고, 한 발짝이라도 더 멀리 갔다 오려고 뛰고 또 뛰었다. 드디어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자, 그는 되돌아 오기위해서 출발 지점을 향해 뛰었으며, 천신만고 끝에 출발점 까지는 돌아 왔으나, 너무 지쳐서 도착 하자마자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 말은 좀 아쉬워도 욕심을 조금만 줄이고 중간 쯤 해서 돌아 왔으면, 땅도 얻고 생명도 보존할 수 있었을 텐데… 인간의 욕심이 빚은 한 삶의 비극을 그린 내용으로, 너무 지나친 욕심의 종말은 파멸 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직업 어떤 직종이던 불만이나 부족함이 없이 완전한 만족감을 주는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만족하고 자족할 때 비로소 자기 직업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만족의 나무에서 행복의 꽃이 핀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신의 능력만 남아 있다면 더 노력하고 더 성장하고, 보다 큰 그릇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판단될 때 까지는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언제 어느 때라도 자신을 성장 시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최선의 노력은 무모한 욕심과는 다르다. 최선의 노력은 항상 현실과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출발하지만, 무모한 욕심은 결국 자기의 처지를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종국에는 파멸을 초래하게 된다. 주변에서 하찮은 일에 종사 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분들이야 말로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박수와 찬사를 보내 의욕을 북돋아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야유와 냉소로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나 자기가 맡은 일에 투철하고 전념하는 사람은 남의 이목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인데,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이목을 의식하는 사람은 그 내면세계에 체면의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참여하면서도, 공·사간 가릴 것은 분명히 가리고, 남의 잘 못에 대해서는 관용과 아량으로 덮어 주면서 바르게 이끌어 주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욕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사기를 북돋아 주고 격려해 주는 인간관계가 조성될 때, 이 사회가 한 차원 높은 삶의 문화와 윤리가 확립 되어 나갈 것이다.
쉘리의(잉글랜드)란 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앞을 보지도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면/ 쓰러져가는 조국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특권자들/ 끝내는 피에 눈이 어두워 거머리처럼 하염없이 떨어져 나가는 구나…
내가 원치 않는 것은 천하절색 양귀비, 천하일미라도 반갑지 않을 것이 싫다, 원치 않는다. 배부르다 의사 표현을 해도 제 좋음을 말하여 고집하는 것이 좋다. 들어봐라 성가시게 하는 것이 쇠파리 인생을 사는 거머리라 볼 일 없다. 원치 않는다, 먹을 일 없다 해도 이 좋은 음식을 왜 몰라? 먹어, 먹어봐, 맛있어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음식을 왜 몰라? 왜 안 먹어? 목을 조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역이라 아무리 좋은 음식, 천하절색 양귀비라도 내가 싫으면 싫은 것을 원치 않는 것은 제 아무리 좋은 것도 티끌보다 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서부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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