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6’기획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6’기획
앙코르 문명을 끝내며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2.20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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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신화에 의하면 우주의 중심은 신들이 거주하는 메루산이며, 신의 화신인 지상의 국왕은 메루산을 본떠서 지상에 신의 도시를 건설하였다. 보로부두르, 앙코르 와트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진은 60미터 높이의 앙코르 와트 중앙사당.
▲프랑스 극동학원의 역사 복원

1907년,앙코르 지방은 프랑스, 시암 조약에 의해 태국의 영토에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편입되면서 프랑스 극동학원(EFEO)에 의한 본격적인 조사, 수복이 개시되었다.
프랑스 극동 학원은 동아시아의 역사, 문화, 민족의 종합 연구기관으로서 1900년 하노이에 설치되었다.
프랑스의 앙코르 연구활동은 유적을 조사, 보존, 수복하면서 비문이나 미술 양식을 연구하고, 발견된 비문 해독을 통하여 각 유적의 건조와 왕의 재위 연대를 확립하여갔다.
비문이 남아 있지 않은 유적에 대해서는 미술 양식의 변화에 근거하여 중국, 라오스, 베트남의 자료를 참고로 하여 역사적인 공백을 메워가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프랑스 연구자에 의해 행해진 방대한 연구성과는 ‘프랑스 극동학원 잡지(BEFEO)’에 발표되어 캄보디아의 역사, 고고, 미술, 종교 등에 관련된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들은 비문연구를 통하여 고대 타이, 수마트라 섬의 슈리비자야 왕국의 존재를 밝혀내기도 하였다.
극동학원장을 맡은 조르쥬 세데스(G. Coedes), 중국 문헌 연구를 통하여 앙코르 비문 자료의 공백을 메운 폴 펠리오(P. Pelliot) 등이 그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이 밖에도 파르망티에(H. Parm entier)나 그로스리에(Groslier) 등 많은 우수한 연구자가 극동학원을 매개로 성과를 발표해 갔다.
이러한 극동학원의 노력으로 오늘날 캄보디아사의 역사 재현이 가능하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앙코르의 역사나 미술 양식과 유적의 변천에 대한 연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스인의 앙코르 연구는 오랜 세월 동안 집적된 거대한 지적 시스템

프랑스인의 앙코르 연구는 거대한 지적 시스템인 ‘동양학’을 조직하여 식민지의 역사, 언어, 문학, 건축에 대한 세밀하고 방대한 연구 성과를 겹쳐 쌓아올려 식민지의 과거를 지적 영역 안에서 객관화시키고, 고대 문명에 대한 놀라움과 의문을 스스로 해소해 가는 방식이었다.
식민지의 과거 역사의 새로운 발견에 흥미를 갖고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 훌륭한 문명이라고 평가하는 자세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남다르다.
인도에서 전파된 앙코르 문명은 15세기에 종말을 맞았다. 하나의 문명이 역사 이래 14세기에 걸쳐 지배했다면 대단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불교 사회주의 국가인 캄보디아 왕궁에서는 지금도 힌두식의 궁정의례가 유지되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도서부에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그림자연극, 문학, 시, 무용은 여전히 힌두문화에 바탕을 둔 것들이다.
국왕의 인격에 의해 정치제도, 정책이 좌우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힌두문명은 오늘날까지도 크메르인의 밑바탕을 흐르고 있다.
지금까지 앙코르 와트를 중심으로 크메르인의 고대 앙코르 문명, 그리고 앙코르 제국과 각축을 벌였던 참파왕국, 수코타이 왕국, 란상왕국의 건국과 쇠퇴과정을 함께 소개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의 전문용어, 생소한 지명과 인명, 약간의 역사적 연대의 차이, 오탈자, 편집과정에서 뒤바뀐 유적사진 등으로 인하여 독자들에게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걱정이 앞선다. 관심을 보여주신데 감사할 따름이다.
생물학자로 앙코르 와트를 세계에 소개한 앙리 무오는 앙코르 유적을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샤토브리앙과 같은 글재주, 풍경화가 클로드 로랭의 그림재주가 없을 한탄했는데, 필자가 바로 그런 느낌이다.
사실 앙코르 유적은 그 어떤 글, 어떤 그림으로도 이를 담아내지 못하는 신비감이 있다.
앙코르 유적을 소개하면서 글과 사진 속에 완전하게 담아낼 수 없는 짧은 지식을 늘 불만스럽게 생각하며 짧은 표현력을 탓할 따름이다.
앙코르 문명의 이해는 동남아시아 고대문화사 집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고, 필자 스스로 채찍을 가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독자 여러분의 넓은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자료를 보완하여 2-3년 내에 살아있는 ‘고대동남아시아문명’을 이해하는 입문서로 출간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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