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 포괄수가제에 대한 편파 중계
[기 고] 포괄수가제에 대한 편파 중계
  • 양돈규 의사 세브란스 소아과의원
  • 승인 2012.07.04 1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즈음 포괄수가제 시행 문제로 시끄럽다. 일부 언론에서는 ‘포괄수가제가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올바른 제도이고, 이를 반대하는 것은 단지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일 뿐이며, 이 제도가 행위별 수가제로 인한 과잉진료를 억제하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나 합병증과 같은 의료사고를 줄일 수 있어 많은 병·의원이 찬성하는데도 오직 일부 의사와 의사협회만이 반대하고 있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진실일까? 포괄수가제란 ‘진단별 그룹’(DRG, Diagnosis-Related Gro up) 분류체계를 이용하여 입원환자의 진료비를 보상하는 제도로서 환자가 병·의원에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진료 받은 진찰, 검사, 수술, 주사, 투약 등 진료의 종류나 양과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일정액의 진료비만을 부담하는 제도이다. 1980년대 미국 내 노인층과 최저소득층들을 위한 공공 의료보호에서 그 경비 지출이 과다하여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흔한 질병을 그룹별로 분류하고, 그 그룹에 따라 일정하게 진료비를 주는 경비절감의 의도에서 출발된 제도이다.
이 제도는 현재 공공의료 비율이 높은 몇몇 선진국에서 일부 도입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확립된 좋은 제도인 것은 아직 확실치 않으며, 가까운 일본도 이제 겨우 시범 사업을 하고 있는 정도다. 그리고 이 제도 시행에 따른 여러 부작용과 단점-의료 서비스가 떨어지고 부적절한 조기 퇴원으로 인한 재입원 사례의 증가, 병원의 공공역할 감소, 사망률 증가 등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 제도로 분명 일부 과잉진료는 막을 수 있겠지만 합병증이나 의료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난센스다.
부족한 서비스로 오히려 합병증이나 의료사고가 더 많아질 소지가 있고, 그로 인해 이차적으로 상급 병원으로의 재입원이나 중증환자에 대한 기피 등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더 들 가능성도 높다.
정부에서 국민의 동의나 의사들의 설득 없이 이 제도를 7월부터 강행하려는 이유를 나름 추정해 보면 첫째 재정 절감이 주목적이고, 둘째는 행정의 편의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는 이런 제도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못 받는 일부 국민들의 불만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보장하는 민간의료보험이 더욱 활성화 되고, 결국은 재벌 보험사에서 의도하는 의료민영화로 나아가기 위한 수순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더 싸지고도 더 좋은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부의 재정 경감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제도는 경비 절감을 위한 제도이지 순수하게 국민과 환자를 위한 제도가 아님은 분명하다.
또 만약 포괄수가제 반대가 단지 의사들의 밥그릇싸움이라면 누구와 밥그릇싸움을 하는 것인가? 약사나 국민들인가? 아니면 의사들이 수많은 진료비를 받아 챙기고 있단 말인가?
한국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 하나가 한국의 의료제도인데, 재미동포들이 한국으로 오히려 들어와 수술을 받고 가는 것은 한국의 의료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미국의 10분의 1 내지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저렴한 진료비 때문이며, 현재 정부에서 제시하는 포괄수과제 수가로는 도저히 그 의료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의사들이 가장 반대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부는 의사협회에서 제안한 토론회와 국민여론의 취합을 반대하고 여론조작만 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들어 국민과 의사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며, 또 정부가 여론 취합도 없이 무조건 강행한 사업 중 정말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 어디 있기나 하였던가 의문이 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