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고스톱을 팽개치자
[논단] 고스톱을 팽개치자
  • 송낙인 서부취재본부장
  • 승인 2007.02.21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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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맞아 무려 전인구의 절반이상이 고향을 찾느라 민족대이동이 벌어졌다. 날씨는 포근했지만 연휴가 짧은 가운데 귀성표 매표구 앞에서 밤샘 행렬을 참아내고 교통지옥 속에서도 그저 고향의 부모형제를 향해가는 길은 즐겁기만 하고 좋게 보였다.
기차로 2~4시간정도 갈 수 있는 거리를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하루 온종일 거북이 기어가듯 차를 몰았지만 그들은 피로의 기색도 전혀 없었다. 부모님을 만나고 그리운 형제들을 만나며 정다운 이웃을 만난다는 기쁨을 생각만 해도 한없이 들뜨고 뿌듯하기 때문이다.
귀향해 설 제사를 지내고 아침 식사가 끝나고 웃어른에게 세배를 하고 조상의 묘에 가서 성묘를 하고 나면 가족끼리 모여 오순도순하게 그동안 지낸 이야기 등을 하기는커녕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디서나 고-스톱 판이 벌어진다. 일명 화투판이다.
화투란 말은 일본에서 하나부다(花札)라고 불리던 화투는 본래 에도(江戶) 시대 말기인 1818년경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들어온 서양의 놀이딱지 카르타의 모조품이다. 일본정부는 백성들이 화투놀음에 골몰해서 제정신을 잃자 명치유신 직후 금지시켰다. 그리고는 그것을 한국에 와서 퍼뜨리고 갔다.
일제치하에서 유행했었다는 ‘화투타령’은 식민지 원주민의 한을 화투에 싣고 있다. 일제가 가져와 퍼뜨린 화투에 울분을 실어서 냅다 패대기를 쳤을 것이다. 던진 패가 짝 하고 들어맞을 때의 기분은 쾌감 그 자체. 누구는 몇 천억, 누구는 몇 백억, 그런 현실도 잊게 만든다.
화투 한모와 방석만 있으면 아무데서나 할 수 있다. 마작이나 포커는 판돈이 크지만 푼돈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쉽게 판을 벌일 수 있다. 그러니 사람 사귀는 데 좋다. 이러한 내용은 건전한 오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강변이다. ‘삼부자가 노름을 해도 끝날 때는 서로 잃었다’고 하는 것이 고스톱의 속성이다.
초저녁에는 형님 동생 하다가도 새벽에는 이놈 저놈 한다고도 한다. 비합리성, 철저히 남을 짓밟아야 이기는 게임 ‘놀부심보’ 조장 변칙적 비합리적 방법으로 추구하는 이익, 지역마다 방법이 다르고 변칙이 많다는 점, 용어가 과격하고 비도적이라는 점, 업무와 건강관리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 고스톱망국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다수의견들이다.
화투타령을 보면,
정월 솔에 쓸쓸한 내 마음/ 이월매화에 매어 놀고/ 삼월 사쿠라 산란한 내 신세/ 사원 흑싸리에 측 늘어지네/ 오월 난초에 나는 흰나비/ 유월 목단에 웬 초상인가/ 칠월 홀돼지 홀로 누워/ 팔월 공산 허송한다/ 구월 국화 굳어진 내 마음/ 시월 단풍에 우수수지네/ 동지 오동에 오신다는 님은/ 섣달 비 장마에 갇혀만 있네/
가 있다.
진수성찬이 들어와도 먹을 생각은 않고 그저 화투만 두드린다. 어쨌든 본전을 찾겠다는 일념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자꾸 잃는 것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한 며느리가 한마디 거든다. ‘아버님 저 똥 먹으세요’라고 아무리 그 말이 화투판에서 하는 말이라 해도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그 뿐인가 며느리가 ‘어머나! 쌌네요, 쌌어요’라고 하면 시아버지도 자존심은 있어서 아무말도 하지는 않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이와 같이 이번 설날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고-스톱을 한다고 하지만 황금돼지해인 정해년 만큼은 고-스톱을 팽개치고 가족들끼리나 친구들끼리 모이면 오순도순 이야기하자. 이젠 우리는 화투장을 팽개치고 정해년 한해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를 위해 대화하고 화해하며, 변화와 개혁, 그리고 전진을 위해 총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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